궐련형 전자담배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궐련형 전자담배 1갑(20개비)당 개별소비세를 기존의 126원에서 594원으로 인상하기로 했기 때문이지요. 당장은 개소세만 오르는 것이지만 개소세가 오르면 나머지 세금도 올라 현재 약 1,500원 정도인 일반 담배와의 세금 차이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논란이 남아 있습니다. 당초 예상과 달리 28일 전체회의에서 다시 개소세 문제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여기에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궐련형 전자담배는 얇은 종이로 담뱃잎을 말아놓은 궐련을 꽂아 피우는 형태입니다. 제품이 없어 못 살 정도로 최근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판매량 알려줄 수 없다” 모르쇠 전략
여기에서 따져볼 부분이 있습니다. 22일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의원들이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의원: “전자담배 판매량이 얼마나 됩니까?
기재부: “그게…”
이날 정부 관계자는 제대로 답변을 못했습니다. 수치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지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를 팔아온 필립모리스코리아가 영업기밀을 이유로 판매량을 공개하기를 꺼렸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듭니다. 모든 수치를 알려줄 필요는 없을 테지요.
하지만 궐련형 전자담배는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품인데, 정부가 얼마나 팔리는지도 모른다는 게 이해가 가시나요? 외부 비공개를 전제로 알려줄 수도 있는데 회사는 끝까지 버틴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위층에서까지 직접 연락을 해 협조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스위스 베른대 레토 아우어(Auer) 교수팀은 일반 담배(‘럭키 스트라이크 블루 라이트’)와 ‘아이코스’를 비교한 바 있습니다. 니코틴은 아이코스가 일반 담배의 84%였고 발암물질의 한 종류인 아크롤레인이나 포름알데히드도 아이코스가 일반 담배 대비 각각 82%, 74%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유해 물질은 아이코스가 더 많았습니다. 아세나프텐은 일반담배의 3배 가까이 검출된 것입니다. 그동안 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에서 발생하는 증기에는 일반 담배보다 유해 물질이 90% 정도 적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상황이 이런 데도 필립모리스 측은 대한민국 정부에 기초자료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는 과세권
국민건강뿐 아닙니다. 세금을 매기기 위해서는 해당 세목의 규모를 아는 건 기본입니다. 쉽게 얘기해 자동차에 세금을 매기거나 혹은 세율을 높이려면 최소한 국내에서의 자동차 판매량을 알아야 합니다. 직간접적으로 제조사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달 초 나온 세법 개정안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이 22%에서 25%로 올랐는데, 해당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면서 세금인상을 추진한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요. 그런데 궐련형 전자담배에서는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전자담배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향후 5%가 되면 세수 손실만 2,466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치가 나온 적이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5%라는 가정 하에 나온 것입니다. 현재의 판매량은 모릅니다.
물론 정부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해당사가 협조하지 않으면서 관세청을 통해 수입량을 기초로 정확한 판매량을 알아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세금을 올렸을 때의 파급효과를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일반 담배에 비해 판매량이 적다고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생각보다 더 많은 국민이 세율 인상에 영향에 들 수도 있는데 과세당국 입장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정보 루트를 총동원해 파악한 결과 아이코스의 누적 판매량은 2,000만갑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이 같은 단순 추정치에 의존해야 한다니 씁쓸하기만 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돈만 벌면 된다?
필립모리스의 ’모르쇠’, ‘버티기’ 전략은 처음이 아닙니다. 아이코스 세금인상 얘기가 나오자 필립모리스코리아 측은 정부 관계자에게 “세금 인상 땐 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습니다. 언뜻 보면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같지만 달리 보면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경고입니다. 대한민국 기업이 미국에 가서 “세금 올리면 철수한다(본지 7월28일자 [요지경 세금구조] 전자담배 1,348원 vs 담배 2,914원 참조)”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을까요. 기자의 생각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하면 더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필립모리스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합니다. 궐련형 전자담배 시대에 대비해 필립모리스는 경남 양산에 4,500억 원 규모의 투자 전략을 마련했는데, 세금이 인상되면 해당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필립모리스는 자사의 이익에 충실합니다. 필립모리스코리아는 지난 2015년 1,917억원을 본사 측에 배당했는데 배당성향이 100%였습니다. 번 돈(당기순이익)을 모두 보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해외기업들의 고배당, 적은 기부금, 현지와의 상생노력 부족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필립모리스에 협조를 요청했던 공무원의 착잡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