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24개 생명·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계약을 감리한 결과 보험사들의 불합리한 보험료 산출 기준 탓에 계약 40만건에 100억원 정도의 보험료가 더 부과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실손보험 계약자가 3,300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숫자는 아니지만 보험사들은 이마저도 “특정 고객군에 대한 통계치 부족 등 특수한 사유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일 뿐”이라며 “실손보험료 인상의 주범인 과잉 진료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세한 부분만 건드려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조해온 보험료 통제를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27일 금감원과 보험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부터 실손보험 감리에 착수, 지난 2008년 5월 이후 판매된 관련 상품의 보험료 산출 과정 및 방식의 적정성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그 결과 일부 회사의 특정 상품 및 연령 계약에서 보험료 산출 기준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다시 말해 표준화 전·후 실손상품 간 요율 역전(9개사), 노후실손보험의 불합리한 보험료 결정 방식(10개사), 부가보험료(사업비 재원) 과다 책정(2개사), 불합리한 손해진전계수 적용(6개사), 추세 모형 적용을 위한 내부 통제 기준 미준수(1개사) 등의 문제로 일부 계약자들이 보험료를 더 냈다는 것이 금감원 측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문제가 적발된 보험사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소명을 받을 것”이라며 “이후 해당 보험사에 보험료 환급과 내년 보험료 인하 등을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험 업계는 “실손보험료 강제 인하라는 정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금감원이 이번 실손보험 감리에 대해 통상적인 보험상품 감리 업무의 일환일 뿐 최근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발표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긋긴 했지만 그간 꾸준히 실손보험을 들여다보면서 비급여 문제점 등에 공감해왔던 당국이 갑자기 자세를 바꿔 실손보험에 손을 댔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심지어 일부 보험사의 실손상품에 대해서는 손해율이 너무 높다며 당국이 먼저 보험료 조정을 권고한 적도 있었다”며 “이렇게 전체 계약 중 일부 계약의 문제점을 부각하면서 보험사들이 불합리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국 보험사에 압박감을 줘 정상적인 계약의 보험료까지도 조정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특히 금감원이 주요 문제 계약으로 노후실손보험을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는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후실손보험의 손해율이 100%를 하회하는 등 안정적인 상황에서도 보험사들이 불합리하게 보험료를 올렸다는 것이 금감원의 감리 결과인데 보험사들은 이에 대해 경험통계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금감원의 권고에 떠밀려 준비 부족 상태에서 출시했던 상품이라고 하소연했다.
보험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실손보험료 인하는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를 부르는 비급여 정상화가 선행되면 자연스럽게 따라갈 문제”라며 “보험사들을 압박해 일부 계약의 보험료를 내리는 모양새만 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