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트럼프·마윈도 한국선 신불자 됐을 것" 패자부활 가로막는 '실패 낙인'도 문제

트럼프 4번·마윈 8번 파산끝 성공

한국은 재도전 기회조차 힘들어

"재창업 지원 컨트롤타워 설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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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의 공통점은 무얼까. 수차례 파산하고도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나 첫 실패까지 같은 과정을 겪었다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겨우 살아가거나 부인이나 자식 이름으로 회사를 차려 사업을 이어가며 평생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기업이 대출받을 때 대표자에게 연대보증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회사가 망하면 대표자가 빚을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되기 일쑤고 재기하기 어렵다. 창업자들의 과감한 도전정신을 가로막고, 실패하며 얻은 소중한 경험을 사회적 자본으로 흡수하지 못하는 것.


국내 제조업 위기의 이면에는 기업가의 재기를 힘들게 만드는 ‘실패 낙인 문화’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이 우량 기술을 지닌 창업 벤처기업들을 기반으로 제조 강국으로 거듭나려면 기업가의 재기를 쉽게 만드는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27일 중소벤처기업부의 ‘재도전 지원기업 성과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정부의 재도전 사업 지원 혜택을 받은 965개 기업의 2년 후 생존율(2016년)은 83.9%로 나타났다. 일반 창업기업의 2년 생존율이 47.5%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운 수치다.


특히 정부의 재도전 지원을 받은 기업들의 매출액 성장세가 돋보였다. 사업에 실패했다 다시 시작한 165개 재창업 기업의 연평균 매출액은 2014년 9억2,000만원에서 2015년 11억3,000만원으로 21.9% 증가했다. 같은 기간 평균 종업원 수도 0.6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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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업자들의 사업 성과가 좋은 이유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처럼 회사가 망하는 과정의 경험이 자양분이 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혹독한 심신 수련을 통해 최고경영자(CEO)로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진 것. 트럼프와 마윈도 각각 네 번, 여덟 번의 파산과 재도전으로 성공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패자부활전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전에서 의료기기 제조사를 운영했던 A씨는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해 부도를 맞은 뒤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다시 사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연대보증은 기업인의 족쇄”라며 “재창업이 어려워지면 그동안 쌓은 기업과 대표의 노하우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조붕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장은 “일부 재도전 지원 정책이 있지만 규모나 내용 면에서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재기지원 펀드·보증을 충분히 마련하는 등 정부의 실질적 조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금융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중 금융권의 연대보증을 폐지할 방침이어서 연간 2만4,000명이 최대 7조원 규모 연대보증의 굴레를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대보증 외에도 기업의 재기를 돕는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다. 회생·파산사건을 주로 맡고 있는 윤준석 김박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는 순간 모든 계약이 파기되고 일감이 끊겨 정작 살아날 수 없다”며 “이행·하자보증을 받지 못해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비만 넘기면 성장할 회사들을 무너뜨리지 않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순히 재도전 지원정책만 쏟아낼 게 아니라 재기 기업의 성장을 위해 정책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하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최근 (예비)재창업자 1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분석을 토대로 재창업 지원제도를 총괄하는 ‘재창업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사업 단계별로 장기적 관점의 맞춤형 지원을 해주고 재창업 자금조달과 교육·컨설팅을 도와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도 “재도전 지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정책 간 시너지를 발휘해 재창업 기업이 중소기업·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강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진혁·한동훈기자 liberal@sedaily.com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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