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알파고 쇼크’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이 글로벌 화두로 등장하면서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상용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금융산업에서는 투자 분야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투자 솔루션을 선보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고려대학교 복잡데이터연구실, 인공지능 핀테크 업체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와 함께 ‘미래에셋 인공지능 금융연구센터’를 출범시켰다. 인공지능 기술과 금융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설치한 것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공지능 기술을 투자 영역에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해당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두 곳의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 고려대 복잡데이터연구실은 인공지능 원천기술을 연구하고, 크래프트테크놀로지스는 실제 투자에 활용되는 솔루션을 개발하며,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공지능 투자 상품 개발을 담당하는 등 3자가 긴밀하게 협력하는 구조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공지능 금융연구센터에서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을 활용한 펀드 1, 2호를 출시했다.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펀드’와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마켓헤지펀드’가 그것이다.
이 두 개의 펀드는 지금까지 어떤 운용 성과를 냈을까. 먼저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펀드는 지난 6월말 기준으로 누적수익률이 18.52%에 달했다. 이는 벤치마크 지수인 코스피 대비 1.8%의 초과수익률을 달성한 것이다.
또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마켓헤지펀드는 같은 기간 3.33%의 누적수익률을 기록했다. 위험을 회피하는 안정 추구형 펀드라서 상대적으로 수익률은 높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이 펀드 역시 벤치마크 지수인 국고채 수익률에 비하면 2.5%의 초과수익률을 얻었기 때문에 꽤 좋은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김완규 미래에셋자산운용 혁신본부장(상무)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두 개의 펀드가 지금까지는 잘 운용되고 있다고 본다”며 “하지만 투자 성과는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국내 최초로 선보인 인공지능 투자 펀드는 ‘폴리곤(Polygon)’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공지능시스템에 의해 운용된다. 폴리곤은 투자의 근거가 되는 경제 지표, 시장 정보, 주식 정보 등 다양한 투자 변수에 관한
대용량 데이터를 입력받은 후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한 결과를 토대로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폴리곤이 마치 펀드 매니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인공신경망 1,000개로 이뤄진 ‘폴리곤’
폴리곤 시스템은 이른바 ‘인공신경망’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다. 인공신경망은 사람의 두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모방한 일종의 알고리즘이다. 인공신경망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사람처럼 학습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요컨대 학습을 통해 점점 더 지능이 높아지면서 진화 한다는 것이다.
석준희 미래에셋 인공지능 금융연구센터장(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이 말한다. “인공신경망은 하나의 수학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신경망은 입력되는 데이터를 끊임없이 학습해 판단력과 예측력을 높여나가게 되죠. 이런 인공신경망 1,000개가 모여 폴리곤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1,000개의 인공신경망은 각각 동일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인공신경망들의 구조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졌습니다. 각자 개성과 특징이 있죠. 사람마다 두뇌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폴리곤 시스템은 사람으로 치면 펀드매니저 1,000명이 모여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1~2년 사이 국내 금융권에서는 투자자 성향 정보를 토대로 자동으로 포트폴리오 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뿐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퀀트펀드(Quant Fund)도 예전부터 활용돼 왔다. 로보어드바이저나 퀀트펀드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닮은 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도 어느 정도 유사점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은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공지능 시스템이 로보어드바이저나 퀀트펀드와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바로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김완규 본부장의 설명이다. “퀀트 기반의 시스템 트레이딩은 미리 사람이 만들어놓은 모델에 따라 투자 결정을 하는 겁니다. 일정한 조건을 설정해놓고 그 조건에 맞는 정보가 포착되면 매매를 하는 식이죠.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경우는 고객들의 투자 성향에 따라 포트폴리오 구성을 자문해주는 서비스인데, 여기에는 비교적 간단한 로직(Logic)만 들어갑니다. 이와 비교하면 인공지능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거죠.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펀드매니저의 역할을 대체하게 될 겁니다.”
폴리곤 인공지능 시스템은 입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운용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다음, 이를 최적 포트폴리오와 비교해 오차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학습을 해나간다. 무엇보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적시(適時)에 분석·처리할 수 있으며, 높은 투자 성과를 얻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핵심 변수들을 추출·활용할 수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폴리곤의 투자 판단 능력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폴리곤은 매일 투자와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입력 받아 학습한 결과를 토대로 투자 비중을 산출하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사람처럼 학습하며 성장하는 인공지능
석준희 센터장이 말한다. “인공지능도 사람과 비슷합니다. 가령 펀드매니저와 비교해볼까요. 펀드매니저도 처음에는 기본 경제원리부터 배우고 그걸 바탕으로 현업에서 데이터를 보고 판단하면서 점차 능력을 키워나가지 않습니까. 인공지능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칩니다. 몇 가지 기본적인 룰을 설정하고 데이터를 계속 넣어주면 스스로 학습을 해나가면서 성장하게 되죠. 다만 인간이 수십 년에 걸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굉장히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단시간에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 최대의 강점이죠. 알파고도 10만개의 기보(碁譜)를 학습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중장기적으로 인공지능의 역할을 크게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사람(펀드매니저)이 운용을 전적으로 맡아왔다면, 앞으로는 사람과 인공지능이 협업하면서 자산을 운용하거나 또는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방식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세 가지 방식이 서로 경쟁하거나 보완하면서 회사 전체의 투자 역량을 제고하도록 하겠다는 청사진인 셈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펀드인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펀드와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마켓헤지펀드의 뒤를 잇는 새로운 펀드 상품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글로벌 자산 배분 역량을 살려 해외 시장에 투자하는 인공지능 펀드를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폴리곤 시스템이 포트폴리오 구성을 담당하게 된다.
지금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투자 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연히 신(新)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 분야에서도 리딩 컴퍼니가 되겠다는 게 미래에셋자산
운용의 목표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역시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을 미래 먹거리로 확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공지능을 활용한 ‘투자의 신세계’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인공지능은 인간 일자리를 뺏을까
인공지능이 급부상하면서 사람들은 한 가지 불안감이 생겼다. 혹여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물론 당장은 아니겠지만 머지않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널리 보급되면 꽤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일례로 인공지능 투자 솔루션이 점점 더 진화하면 펀드매니저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지금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펀드매니저를 보조하는 측면이 크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의 역할과 비중이 훨씬 커질 것이 확실시된다.
김완규 본부장은 “처음 인공지능 활용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며 “하지만 실제 인공지능 상용화 속도를 보니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빨라서 5~10년쯤 뒤에는 펀드매니저 역할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석준희 센터장은 “시간이 갈수록 인공지능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분명한 트렌드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힘이 필요한 영역은 있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고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투자 시장에서 인공지능 활용이 일반화되는 시대가 온다면, 인간 펀드매니저와 인공지능의 대결이 아니라 인공지능끼리 수익률 경쟁을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 우수한 인공지능이 승리를 거머쥘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그 인공지능을 만든 ‘인간’이 아닐까.
석준희 센터장은 “인공지능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기술력과 노하우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라며 “결국 좋은 인력을 투입해 더 나은 인공지능 솔루션을 만드는 쪽이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