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세미팔라틴스크에서는 신생아의 상당수가 방사능으로 인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다고 한다. 1945년 구소련이 이곳에 지은 핵실험장은 456차례 핵실험 끝에 150만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1991년 폐쇄됐는데 그후로 26년이나 지났는데도 이곳 사람들의 방사능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북한은 2006년 이후 백두산 인근 풍계리에서 다섯 차례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풍계리에서 방사능 유출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탈북 작가 김평강(필명)의 소설 ‘풍계리’가 전하는 모습은 다르다. “영문 모르게 전립선과 성 기능 부전으로 고생하다가 자살하는 청년들, 노인들이 심근경색으로 마비증상을 일으켰고 유행성관절염과 유행성간염, 간경변, 뇌출혈로 서서히 쓰러졌다.”
방사능 고통은 참혹하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의 모습을 담은 나카자와 케이지의 장편만화 ‘맨발의 겐’을 보면 그 참상이 적나라하다. 엄마의 젖을 놓지 못하는 아기, 쓰레기 치우듯 죽은 시민들을 소각하는 군인들, 시체 속에서 금니를 한 엄마를 찾기 위해 시체 입을 벌려 확인하는 소녀 등…. 당시 히로시마는 지옥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모습을 보고도 인류는 핵무장을 멈출 줄 몰랐다. 미국에 이어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했고, 영국은 1952년, 프랑스는 1960년, 중국은 1964년 핵보유국이 됐다. 여기에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이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채 핵무기를 보유했다. 이제는 북한이다.
핵은 단숨에 인류를 소멸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공할 파괴자다. 인류 최후의 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운명의 날 시계’가 1953년에 종말의 순간인 자정의 2분 전까지 치달은 것은 미소 양국의 수소폭탄 실험 탓이었다. 1991년 운명의 분침이 자정 17분 전으로 멀어진 것은 냉전체제 해소와 핵 군축 덕이었다. 그리고 2017년 운명의 시계는 다시 종말에 바짝 다가서 11시57분30초를 가리키고 있다. 핵 위기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미중의 패권 다툼과 북핵 문제가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시리아에서, 남중국해에서, 그리고 한반도에서 대결의 전선을 급속히 확대해 ‘신냉전’ 벨트를 형성했다. 북핵은 신냉전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은 5차례 핵실험과 2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시험을 거쳐 핵보유국 지위에 근접했다.
이렇듯 한반도 위기는 긴박해만 가는데 우리에게는 뾰족한 대응수단이 없다. 게다가 하필 이 순간 핵 위기 해결의 열쇠를 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둘 다 예측 불가한 인물이라는 점이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운명의 날 시계’가 또 다시 자정에 바짝 다가서게 된 것이다. 인류의 멸망을 경고하는 시계의 알람 소리에 귀 기울여야 마땅하다.
얼마 전 영화 ‘터미네이터3’를 보고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최근의 불안 탓이다. 영화에서는 컴퓨터 시스템(기계)에 대한 통제력 상실로 인류가 핵 공격을 받고 멸망의 순간을 맞게 되는데 현실 속 우리도 마찬가지로 북핵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좌불안석 아닌가. 그래도 이성에 대한 믿음만은 놓지 말아야 한다. 영화에서도 “미래는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만드는 운명뿐”이라지 않나. 이처럼 우리도 광기에 사로잡힌 북핵을 이성의 범주로 되돌려, 문제를 해결해내야 한다.
오늘(8월29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핵 실험 반대의 날’이다. 세미팔라틴스크는 1991년 8월29일 폐쇄됐는데도 여전히 그곳 사람들의 고통이 크다. 북한은 너무 늦지 않게 풍계리 핵실험장을 닫고 비핵의 길로 돌아가야 한다. 비핵화와 핵확산 중단은 인류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다. 북한은 물론, 미국도 그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hns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