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리더십의 원천은 신뢰에 있다. 하지만 신뢰보다는 의심을 통해 조직을 관리하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그 결과는 리더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난다. 의심이 많은 리더는 불행에 빠지기 십상이다.
재기(再起)라는 단어를 듣는 일이 드물어졌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한번 쓰러지면 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잡한 세상을 감당해야 하는 조직의 리더는 재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기해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지혜가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즉 잘나가는 리더가 되는 것보다 덜 위험해지는 리더가 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일에 ‘의심’을 갖는 것이다. 무턱대고 선택한 일과 사람 때문에 곤란을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심을 가지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위험한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일과 사람에 대한 의심을 갖는 것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능력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지나치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사람에 대한 의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리더가 위기에 빠지기 쉽다. 리더의 신중하고 노련한 의심은 초년의 성공 밑천이 되지만 성급하고 미련한 의심으로 변질된다면 말년의 실패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상황이 불리해지거나 리더 본인의 자신감이 떨어져 마음이 약해지면 의심은 습관이 된다. 그렇다면 의심 많은 리더의 특징은 무엇이고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의심 많은 리더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사람을 오래 쓰지 않는다.’ 의심이 많은 리더는 당연히 사람을 쉽게 의심한다. 특히 인간적인 배신을 한번이라도 경험한 리더라면 좀처럼 사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싫증도 잘 낸다. 리더의 의심하는 습관은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오염시킨다. 처음에는 리더의 의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리더로서 가질 수 있는 책임감의 다른 표현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리더의 의심이 반복되면 오히려 리더를 의심하게 된다. 리더가 부하를 의심하고 있다면 부하는 이미 리더를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의심 많은 리더를 그냥 지나치는 바보 같은 부하는 없다. 의심 많은 리더의 의심을 해소하기보다는 의심받을 그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기 위해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게 된다. 결국 리더의 의심은 주변 사람들의 의심을 키우고 그 의심은 리더에 대한 회피 동기를 자극하게 된다. 무슨 일을 해도 의심을 받는다면 무슨 일인들 하고 싶겠는가? 의심 많은 리더는 공공의 적이 되고, 나아가 모두가 침묵하는 조직을 만들기 십상이다. 그러한 주변인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지켜보면서 리더는 자신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다고 착각하면서 기꺼이 사람을 버린다. 의심 많은 리더는 사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의심 받은 부하는 리더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둘째, ‘용서가 없다.’ 의심 많은 리더는 자신이 의심하는 사람을 실제보다 더욱 가혹하게 판단한다. 작은 실수에도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속단을 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후견지명(後見之明, 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즉 선견지명(先見之明)과 반대되는 의미로서, 결과가 도출된 후에 뒤늦게 처음부터 이럴 줄 알았다고 판단해버리는 지각적 오류를 말한다. 이러한 후견지명의 후폭풍은 상대방의 잘못을 지나치게 부풀려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 많은 리더에게 한번 찍히면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수를 한 것은 잘못이지만 그 실수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혹하면 누구나 분노하기 마련이다. 분노한 부하직원이 작은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리더에 대응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부하도 리더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리더가 실수하기만을 고대하거나 심지어 리더가 실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가해자나 방관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리더의 가혹한 의심은 거칠게 표현하면 리더에 대한 부하들의 가혹한 복수를 초래할 수 있다.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의심 많은 리더는 반성에 앞서 자신의 의심 많은 습관 덕분에 이 정도의 피해만을 보았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리하여 의심은 점점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고 결국 리더 본인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의심할 만한 나쁜 존재라고 인식되게 되어 리더 스스로 더욱 고립된다.
셋째, ‘본인도 괴롭다.’ 의심이 많은 사람은 자신이 의심하는 사람만큼 힘들다. 늘 의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피곤하지 않을 리 없다. 심한 경우에는 의심을 하지 않으면 자신까지 의심하기도 한다. ‘내가 왜 이럴까?’ 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작아지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다. 의심이 커지면 내부 직원들의 말은 일방적으로 믿지 않거나 회피하면서 남들의 말은 잘 듣는다. 의심이 많으면 본래 귀도 얇아진다. 그러다 보니 가장 가까이 해야 할 사람은 멀리하고 멀리해야 할 사람은 곁에 두는 아이러니를 거리낌없이 실행에 옮긴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은 리더는 참 어리석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의심하고 멀리하면서 일시적이고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에 의지하려는 리더는 그 누구보다 약한 존재이다. 겉은 의심으로 강한 듯 포장하지만 속은 남과 공유할 수 없는 고독으로 괴롭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절친(切親)이 없다. 의심 많은 사람에게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넷째, ‘남 탓만 한다.’ 의심은 타인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다. 어떤 일이 잘 안되면 원인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특히 누군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과거에 성공 경험이 많은 리더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확신 때문에 일이 잘못된 원인을 더더욱 외부에서 찾게 된다. 바로 ‘성공의 저주’ 때문이다. 과거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변한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심을 먼저 한다. 그럴수록 의심의 강도는 강해지고 의심을 표현하는 방식도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자신의 의심에 찬성하는 사람만 믿게 되고 반대하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돌린다. 결국 의심 많은 리더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만 남아 과분한 권력을 사유화하게 되고, 진실을 말했던 사람들은 억울한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조직을 떠난다. 의심 많은 리더는 외형상으로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누리겠지만 조직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진정으로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사라지고 리더의 의심을 추종하고 숭배하는 사람만 남기 때문이다. 사태가 그렇게 된 후에도 의심 많은 리더는 진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분노만 내뱉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 십상이다.
이상과 같이 의심 많은 리더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요즘처럼 리더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으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클 수밖에 없다. 리더의 두려움과 염려는 의심을 키우는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불필요한 의심을 줄이면서 좋은 사람을 잃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올바른 리더십은 바로 ‘신뢰’라는 원천에서 출발한다. 의심은 신뢰 결핍의 다른 표현이다. 물론 조직에 늘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리더가 아무리 잘해도 배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고 처음과 달리 변질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명의 나쁜 직원에 대한 편견 때문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동일한 잣대로 편견 섞인 의심을 갖게 되면 리더 본인만 골탕 먹는다. 우선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들에게 리더와 조직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불필요한 의심으로 인한 저주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좋은 조직에는 좋은 문화가 있고, 좋은 문화는 신뢰로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그 가운데 리더가 있어야 한다. 리더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뢰 사이에 있어야 본인을 가장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만약 리더가 의심으로 가득한 분위기 속에 있다면 해줄 것 다 해주고도 욕만 먹는 불행을 겪게 된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사람이 중요하다. 리더의 에너지를 의심이 아닌 신뢰에 집중할 수 있어야 리더십이 살아날 수 있다.
신제구 교수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주요 기업 등에서 리더십, 팀워크, 조직관리 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교육컨설팅코칭학회 회장, 대한리더십학회 상임이사, 한국인력개발학회 상임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크레듀 HR연구소장, KB국민은행 연수원 HRD컨설팅 팀장,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글 신제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