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빨래경전

이언주 作

3015A38 시로여는수욜




어머니, 지겹지 않으세요


아침마다 손으로 읽는

그 페이지

오늘은 세탁기에서 읽어요

비누 거품 풍선 불면

얼룩 팡팡 터져요

통돌이 난타를 두드려 봐요

온 가족 윙윙 부비부비 춤춰요

우주로 밥상 날린 아빠 외박한 오빠

다 함께 차차차,

섀킷 섀킷

어깨를 흔들어요

온 가족 신나게 트위스트


브래지어 고리 물고 림보라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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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까만 발바닥 요리조리 헤엄쳐요

벨 울려도 허리 굽히지 마세요

스텝 꼬인 빨래 쏙쏙 뽑아

비행기를 날려요



한 장 더 넘기면

어머니, 햇살 눈부셔요

쯧쯧, 양말은 따로 손빨래하라고 일렀거늘 한목에 털어 넣는 버릇 여전하구나. 오빠는 탄광을 다니는지 문어를 사귀는지 옷마다 먹구름이냐. 속옷과 셔츠가 뒤엉키니 망측스럽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구나. 온 식구 손잡아본 지 언제더냐? 통돌이 속 빨래들 참으로 돈독하고 신명 나는구나. 저마다 묻혀온 얼룩진 사연들 어르고 쓸며 읽고 또 읽는구나. 주머니며 솔기까지 살뜰히 읽고 나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빨래경전, 그 눈부신 힘으로 다시 오늘 치 얼룩을 만나러 나가겠구나.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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