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예술 만난 덕수궁, 대한제국으로 돌아가다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9월1일부터]

중화전 동행각 안으로 들어서면 근대 서울 풍경이 흑백사진으로

석조전 복도엔 고종·덕혜옹주, 덕흥전선 외교문서·서적 재현

침전이자 고종 승하한 함녕전선 그의 고뇌·꿈을 담은 작품 상영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오른쪽)과 임수식의 ‘책가도 389’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오른쪽)과 임수식의 ‘책가도 389’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만방에 알린 곳 덕수궁. 과거를 간직한 덕수궁을 배경으로 역사에 현대예술을 입힌 ‘덕수궁 야외프로젝트:빛·소리·풍경’전이 1일 개막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가 공동주최한 기획전으로 앞서 2012년에 처음 ‘덕수궁 프로젝트’가 열린 후 두 번째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으로 들어가 처음 만나는 전각인 중화전 동행각 안에서는 백 년 전 덕수궁 주변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숭례문과 광화문 사이 어디쯤인 듯한 흑백 사진 속에는 전차와 자전거가 오간다. 교과서나 다큐멘터리 속 자료사진으로 등장하던 이들 풍경을 작가 장민승은 구석구석 클로즈업했고 그 안의 사람들을 찾아냈다. 교과서나 박물관 유물로 만날 수 있는 이들 사진은 당시 풍경을 보여주는 박제된 이미지였지만 확대해 발견된 사람들은 소박하고 성실한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전차를 구경하는 한복 입은 소녀들, 사진술이 신기한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소년이 있는가 하면 나름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너느라 도포자락이 휘날리는 갓 쓴 남자 곁에는 교통안내원이 서 있다. 지금까지 보존된 한국은행 건물을 파고들었더니 테라스에 서 있는 사람, 유리창 닦는 사람이 있었고, 남대문을 들락거리는 지게꾼, 보부상도 볼 수 있다. 파도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음악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인 양방언이 맡았다.

장민승이 영상을 만들고 양방언이 음악을 맡은 ‘온돌야화’ 중 한 장면. 근대기 서울의 풍경 사진을 확대한 결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다채롭게 발견됐다. /사진=조상인기자장민승이 영상을 만들고 양방언이 음악을 맡은 ‘온돌야화’ 중 한 장면. 근대기 서울의 풍경 사진을 확대한 결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다채롭게 발견됐다. /사진=조상인기자


석조전 본관과 별관을 잇는 복도에서는 정연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석조전 난간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고종황제와 덕혜옹주를 재현해 찍은 사진을 비롯해 가벽 4면 모두에 작품이 자리잡고 있다. 두 부녀의 다정한 한때가 사적(私的)인 시선으로 본 것이라면 그 반대편에서는 을사오적이 함께 등장하는 치욕의 시선이, 석조전 아래에서 백성이 올려다보듯 촬영한 것에는 공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커튼 너머 관람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들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애처로운 역사의 아픔이 느껴진다.


바로 옆 석조전 서쪽 계단에는 작가 김진희가 채집한 덕수궁 주변의 소리가 분해된 기계에서 흘러나온다. 전자제품을 해체하고 재조립해 내부에 숨어있던 색과 기능을 꺼내놓는 작가는 MP3스피커와 라디오 부품들을 새로운 형체로 재탄생시켰다. 전선과 부품으로 이뤄진 작품이 꼭 거미줄을 닮았다. 스피커에서는 재잘거리는 사람들소리, 경적소리, 음악소리 뿐 아니라 100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냈을 성공회교회의 종소리도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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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2층 전각 석어당 대청마루에서는 권민호의 대형 드로잉 작품 ‘시작점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석어당의 정면 외관을 그린 것으로 대한제국 시기에 막 시작된 근대화의 풍경이 담겼다. 그 앞에 매달린 백열등 전구는 근대의 상징이다. 전기는 왕실을 중심으로 처음 들어온 신문물이며, 불 들어온 전등을 보고 고종황제가 깜짝 놀랐다는 기록이 전한다.

덕수궁 석어당 대청마루에 설치된 권민호의 ‘시작점의 풍경’ /사진=조상인기자덕수궁 석어당 대청마루에 설치된 권민호의 ‘시작점의 풍경’ /사진=조상인기자


권민호의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이 설치된 덕수궁 석어당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권민호의 드로잉 ‘시작점의 풍경’이 설치된 덕수궁 석어당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고종황제의 외교 접견실로 사용된 덕흥전은 서가가 됐다.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라이트북(Light Book)’ 작업을 진행해 온 강애란은 조선왕조실록, 고종황제가 즐겨 있던 서적과 외교문서 등을 재현해 황제의 서고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을 꾸몄다. 가운데 고종의 책상에서는 을사늑약이 된 한일협상조약과, 고종이 주장한 을사늑약무효선언서가 번갈아 보여진다. 임수식은 그 맞은편에 현대판 책가도 병풍을 세웠다. 미술사학자 최열·조은정 등 근대사연구자들의 서재를 촬영하고 재조합해 우리 근대사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을 제작했다.

고종황제의 침전이었으며 승하한 곳이기도 한 함녕전에서는 이진준의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불면증&불꽃놀이’가 상영 중이다. 방 안의 반복적인 영상은 구한말 일제의 강압과 암살 위협 속에서 불면증에 시달린 고종황제의 심경을 투영한다. 방 밖에서는, 환호성만 들으면 불꽃놀이의 한 장면인 듯하지만 실상은 총알과 포탄이 넘나드는 전쟁의 장면들이 펼쳐진다. 함녕전 앞 행각에서 만날 수 있는 오재우의 VR작품 ‘몽중몽’에서는 고종황제의 원대한 꿈과 그 시절 사람들이 꿈꾸던 미래인 오늘날의 모습이 교차된다. 빛과 소리를 이용한 작품들이라 야간 관람이 더 효과적이다. 전시는 11월26일까지.

덕수궁 적흥전에 설치된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 /사진=조상인기자덕수궁 적흥전에 설치된 강애란의 ‘대한제국의 빛나는 날들’ /사진=조상인기자


임수식이 근대사 연구자들의 서재를 재조합 해 꾸민 ‘책가도389’는 근대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보여준다. /사진=조상인기자임수식이 근대사 연구자들의 서재를 재조합 해 꾸민 ‘책가도389’는 근대를 보는 우리의 시선을 보여준다. /사진=조상인기자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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