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지나가기 무섭게 수은주가 뚝 떨어진다. 환절기다. 예상 밖의 이른 가을에 주변에 감기 환자도 부쩍 늘었다. 여름 내내 무더운 날씨에 익숙했던 몸이 갑자기 커진 일교차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주택시장도 제대로 고뿔에 걸린 모습이다.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시장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대책 이전과 대비된다. 그동안 집값 상승의 진원지였던 서울 강남 4구의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 8월 한 달간 마이너스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차갑게 매수세가 식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표현대로 ‘시장이 예상한 두배’의 초고강도 대책은 우려대로 곳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집을 늘리거나 좀 더 나은 곳으로 옮기기 위해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기존 1주택자들의 피해다. 대출규제 강화로 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겼지만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입주 때까지 분양권을 팔 수 없게 된데다 매수세가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기존 주택마저 처분하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사정은 딱하지만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특별히 집값이 오르지도 않았음에도 도매금으로 투기과열지구로 묶인 서울 외곽지역 주민들의 불만 역시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른바 ‘풍선효과’ 차단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오히려 정부는 다른 지역도 언제든 집값이 오르면 투기과열지구로 묶어버리겠다며 시장에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실 혼란은 대책 발표 때부터 예고됐었다. 시장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만큼 초고강도 대책을 한꺼번에 퍼부으면서도 시장이 이를 받아들일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2대책 중 법 개정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한 상당수 규정은 단 하루의 경과기간도 없이 ‘즉시 시행’이 이뤄졌다. 한마디로 자다가 뺨 맞은 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법이 개정될 때 6개월 안팎의 경과기간을 두고 시행하는 이유는 국민이 이를 인지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는 의미”라며 “하루아침에 무 자르듯 시장의 손과 발을 묶은 것은 지나치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다주택자들을 향한 정부의 대응은 마치 적폐(積弊)를 대하는 듯하다. 내년 4월까지 적용이 유예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를 언급하면서 “기회를 줬으니 팔고 나가라”는 식의 엄포를 놓고 있다. 법 개정에 따른 당연한 경과규정을 두고 마치 선심이나 쓴 듯한 태도다.
정부가 ‘다주택자=투기세력’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만들면서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계층간 갈등이 심화할 조짐마저 보인다. 인터넷에 게재된 부동산 대책 후속이나 집값 관련 기사 아래에는 어김없이 원색적인 상대방을 비방하는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는 ‘주택시장 안정’ 못지 않게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린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갖게 한다.
물론 정책은 선택의 문제다. 선의의 피해자가 없는 정책은 없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고민하는 것 역시 정책 당국의 의무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