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흔들리는 ‘모디노믹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산업 관련 부처 장관들을 대폭 물갈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특히 모디 총리는 ‘테크노크라트(전문관료)’들을 해당 부처들에 전면 배치해 지난해 11월 화폐개혁의 여파로 둔화된 경제 성장세를 회복하겠다는 노림수를 드러냈다. 현지 언론들은 모디 총리가 오는 2019년 총선을 앞두고 모디노믹스에 대한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선제대응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인도 경제지 이코노믹타임스는 4일 모디 총리가 전날 취임 후 세 번째 개각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개각으로 총 75명의 각료 중 6명의 장관이 경질됐으며 4명의 장관 승진자와 9명의 국무장관(부장관급)이 발탁됐다. 인도 정부 체제에서 각료는 장관과 소규모 부처 수장인 국무장관으로 나뉜다. 모디 총리는 이날 장관 선서식을 마친 뒤 트위터에 “신임 장관들의 경험과 지혜는 정부에 굉장한 가치를 선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산업 관련 부처 수장들이 테크노크라트로 대거 물갈이됐다는 점이다. 총 9명의 신임 국무장관 중 4명이 전직 관료로 구성됐으며 이 중 3명이 산업 관련 부처에 임명됐다. 인도 엘리트 공무원단인 IAS 출신 라지 쿠마르 싱 전 내무차관과 알폰스 카난타남 인도국민당(BJP) 행정위원은 각각 전력부와 전자·정보기술(IT)부 국무장관에 임명됐으며 하딥 싱 푸리 전 브라질 주재 인도대사는 도시개발부 국무장관직을 맡았다. 이 밖에 중소기업부, 기술 및 기업가정신부도 장관이 저성과자로 분류돼 자진 사임하면서 수장이 교체됐다.
이코노믹타임스는 “전직 공무원들의 입각은 모디 총리의 새로운 성장계획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모디 정권의 화폐개혁 이후 인도 경제의 성장동력이 눈에 띄게 약화하자 모디 총리가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경제를 되살리려는 청사진을 짰다는 것이다. 프라밧 고시 아시아개발연구원 애널리스트는 “테크노크라트 기용은 정부 정책을 선명하게 집행하겠다는 의도”라며 “모디 총리는 이번 개각으로 자신의 힘을 계속 쌓아올리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현지 언론들이 이번 개각을 2019년 총선을 앞두고 모디 총리 자신의 연임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모디 정권의 화폐개혁은 현재 완료단계에 들어섰지만 그에 따른 타격은 경제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4분기 5.7%로 모디 총리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2·4분기 경제성장률이 화폐개혁 전인 지난해 3·4분기(7.5%)와 비교해 2%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며 예고 없이 단행된 화폐개혁이 인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화폐개혁으로 15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모디노믹스’의 성공과 탄탄한 지지율 때문에 모디 총리를 효과적으로 공격하지 못했던 야당은 화폐개혁을 기점으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시행된 세법 개정안인 상품·서비스세(GST)법이 산업계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여기에 모디노믹스를 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라구람 라잔 전 인도중앙은행(RBI) 총재가 이날 발표한 회고록에서 “지난해 2월 이후 내 임기 동안 RBI에 화폐개혁에 대한 의견을 물은 사람은 없었다”며 화폐개혁이 모디 총리의 독단적 결정이었음을 폭로해 인도의 경제 문제는 계속 정치적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모디 총리는 중국과의 국경분쟁으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그동안 재무장관과 겸했던 국방장관직을 다시 분리하고 여성인 니르말라 시타라만 통상산업부 국무장관을 임명했다. 인도에서 여성 국방장관이 임명된 것은 35년 만으로 1947년 인도 독립 이후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