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활성기체인 헬륨(He, 원자번호 2)과 아르곤(Ar, 원자기호 18)을 발견한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램지는 이 두 원소를 주기율표에 배치한 뒤 원자번호 10, 36, 54, 86번이 비어 있음을 알았다. 램지는 앞서 발견한 두 원소가 기체임을 감안해 빈칸에 들어갈 원소들도 기체일 것으로 추정하고 공기를 액화시킨 뒤 분별 증류를 통해 새 원소를 알아내는 방법을 택했다. 드디어 1898년 그는 액화공기에서 10번 네온(Ne)과 36번 크립톤(Kr)을 찾아냈다. 곧이어 크립톤을 재분별 증류하는 과정에서 54번 원소를 발견했다. 램지는 이 원소에 ‘낯선’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xenos’에서 단어를 빌려와 ‘제논(xen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인공방사성동위원소 제논 131, 133, 135는 핵폭발 여부를 체크하는 지표물질이다. 이들이 우라늄235와 플루토늄239의 핵분열에서 직접 혹은 2차 산물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일본대지진 발생 8개월 뒤인 2011년 11월2일에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2호기에서 제논 133, 135가 검출되며 안전 우려가 증폭됐었다. 이들 제논은 반감기가 각각 5일, 9시간에 불과한데 대지진 발생 8개월이 지나 또다시 검출됐다는 것은 사고 원전에서 다시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후 우려했던 사고는 없었지만 후쿠시마 원전은 핵폭발로 생겨나는 제논 등의 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한반도에서 방사성물질인 제논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4일 동해상에서 이동식 장비를 이용해 제논 포집작전에 나섰다. 전날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실시한 6차 핵실험의 ‘스모킹건’을 잡기 위해서다. 만일 포집에 성공해 동위원소 구성비율을 분석하면 핵폭탄 제조방식이나 기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비록 과거 다섯 차례에 걸친 북한 핵실험에서는 원하는 양의 제논을 포집하지 못했지만 이번 핵실험은 어느 때보다 강도가 셌던 만큼 우리 정부가 북한의 뒷덜미를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철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