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제발, 이것만은 바꿉시다Ⅱ]"이달 월급 줄테니 나가라"…반말·욕설·인신공격…샌드백 신세 乙

< 1 > 일상 속 갑질언어

"그 자리 채울 사람 많다"

"당신 능력이 그것밖에 안되냐"

정확한 문제 지적 않고 질책만

직장 내 권위 이용해 폭언 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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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이렇게 하는데 학점은 어떻게 받았나. 교수에게 아부라도 했나.”


직장인 황모(28)씨가 보고서를 제출하자 앞에 앉은 상사가 쏘아붙였다. 상사는 보고서는 제대로 읽지도 않은 채 “일이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이직하는 게 낫겠다” “이달 월급까지 줄 테니 나가라”고 질책했다. 황씨는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나 자신의 가치 자체를 무능하게 만드는 것 같아 서러웠다”고 토로했다.

갑질이나 막말은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일상 속에서 행하는 사례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황모씨가 당한 직장 내 언어폭력이다. 회사 조직이 대부분 나이나 직급에 따라 상사와 부하로 나뉘고 상명하복식 직장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정보기술(IT) 관련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9) 과장은 직장 상사인 모 부장의 언어폭력이 너무 심해 이직을 고민 중이다. 김 과장은 “다른 부서와의 업무일정 조율은 부장님이 해야 할 일인데도 과장급에게 미루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냐’고 질책하기 일쑤”라며 “최근 업무와 관련해 부장님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냈더니 한 달째 퇴근하기 직전에 업무를 주고 다음날 아침에 보고하라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통업계에 다니는 박모(28) 대리는 요즘 꿈에서 직속 과장을 주먹으로 때리는 꿈을 자주 꾼다. 그 과장은 “그렇게 일하려면 나가라. 그 자리 채울 사람 많다” “대학교 나온 것 맞느냐”는 등 모욕적인 말을 하루에도 수차례 한다. 박 대리는 “가급적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회사라는 곳이 그렇게 되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업무성과와 시장가치가 직장의 핵심가치로 부상하면서 ‘돈값·임금값을 못하면 인신공격을 당해도 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찬규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통 빈도가 낮고 성과를 중시하는 조직일수록 언어폭력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피해자에게도 제도적 견제 장치를 줘 상호 간에 조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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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은 공공기관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전국공무원노조 광주 광산구지부가 지난달 진행한 ‘제7대 광산구의회 의원의 인격권 침해에 관한 설문·서면 조사’ 결과 이러한 천태만상이 드러났다. 광주 광산구의회 소속 A구 의원은 여직원에게 “의원도 자리를 안 비우는데 네가 왜 밥을 먹느냐”는 등 부당한 트집으로 수년간 언어폭력을 행사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다른 공무원들도 일부 구의원에게 상습적으로 폭언, 부정 청탁, 논문 대필 요구 등을 당했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4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목에 붙은 ‘갑질’ 예방 캠페인을 한 시민이 읽어보고 있다. /신다은기자4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골목에 붙은 ‘갑질’ 예방 캠페인을 한 시민이 읽어보고 있다. /신다은기자


서비스업계도 언어폭력 만연

피해자들 현실적 대응 어려워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업에서는 더욱 심하다. ‘고객이 왕’이라는 생각이 강해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을’로 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 서울 강동구의 한 개인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윤모(27)씨는 매일 밤 ‘갑질환자’들과 사투를 벌인다. 환자들은 윤씨를 “아가씨” “어이”로 부르기 다반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데도 “너 말고 의사 오라 그래”라며 대놓고 무시한다. 윤씨는 “욕설보다도 나를 의료인이 아니라 조수 취급 한다는 게 더 굴욕적”이라며 “병원에서는 손님 떨어진다며 이런 태도를 지적하지 말라고 하는데 화병이 날 지경”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갑질 언어폭력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판례에 따르면 직장 내 언어폭력은 명예훼손(형법제307조), 모욕(형법 제311조)을, 소비자에게 당하는 직장 외 언어폭력은 업무방해(형법 제313조) 등을 적용해 형사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언어폭력을 일일이 녹음하기 어렵고 제3자가 없는 데서 한 폭언은 모욕죄와 명예훼손죄의 필요조건인 ‘공연성’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규모가 작은 회사일수록 고객 수에 민감해 손님들의 갑질 행위를 묵인한다는 점도 난제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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