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힝야족만의 문제가 아니다.”(디플로맷)
지난달 25일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발생한 무슬림 소수민족 로힝야족 반군과 미얀마 정부군 간 유혈충돌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로 주목받으며 민주화의 첫발을 뗀 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지난해 10월 로힝야족 무장반군의 경찰초소 공격이 발단이 된 1차 유혈사태에 이어 또다시 불거진 이번 충돌로 박해받는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비극과 정부군의 ‘인종청소’ 의혹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번 2차 유혈사태로 지금까지 발생한 사망자 수가 410명 이상, 지난해 이후 국경을 넘어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탈출한 로힝야족 난민이 25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국제사회는 로힝야족 민간인들에게 정부군이 자행하는 강간·고문·살해 소식에 공분과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얀마의 민주투사로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한 정부 실권자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이 이 사태의 책임을 로힝야족 반군세력에 돌리자 일각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빼앗으라”는 요구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주목받는 ‘기회의 땅’으로 알려졌던 미얀마가 드러낸 인권유린의 추악한 민낯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도, 로힝야족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도가 다를 뿐 135개 민족으로 구성된 미얀마에서 불교를 믿는 주류민족인 ‘버마족’이 아닌 소수민족들은 지난 수십년간 온갖 차별과 학대에 시달려왔다. 그 심각한 분열상은 서구 제국주의가 남긴 깊은 상처다.
미얀마 민족·종교분쟁의 실마리는 영국 식민지배가 시작된 지난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곡물 공급을 위해 미얀마를 식민지화한 영국이 경작민들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미얀마의 민족 구성이 복잡해진 것이다. 영국은 토착 소수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가 하면 영국을 따르는 이들을 우대하고 주류 ‘버마족’을 천대하는 분할통치 정책을 폈다. 버마족은 미얀마 국민의 68%를 차지하며 불교를 믿는다. 과거 불교도와의 반목으로 방글라데시로 쫓겨났던 무슬림 로힝야족이 미얀마로 돌아온 것도 이때부터다. 로힝야족은 영국인들의 비호 아래 중간지배 계급으로 자리 잡고 고리대금업 등으로 가난한 토착민들을 착취해 버마족의 반감을 샀다.
현재 주류 버마족이 소수민족들에게 보이는 배타적 태도와 학대의 이면에는 식민지 시대에 대한 반감이 있다. 로힝야족 외에 현재 차별과 박해에 시달리는 소수민족들은 당시 영국의 우대정책을 누린 이들이다. 미얀마에서 세 번째로 수가 많은 ‘카렌족’은 영국 식민지 독립 후 1년 만인 1949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내전을 일으켰다가 억압과 가난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으며 이들과 유사하게 기독교를 받아들인 카친족도 지금까지 정부군과의 충돌을 이어가는 가운데 민간인들은 납치·살상·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로힝야족 탄압은 이 정서를 가장 극명히 드러낸 사례다. 버마족은 로힝야족을 ‘방글라데시로부터 이주해온 사람’이라는 뜻의 ‘벵갈리’로 부르며 그들과의 접촉 자체를 거부한다. 로힝야족은 원래 미얀마 사람이 아니라는 경멸의 뜻이 담긴 것이다. 버마족은 소수민족의 존재가 불교를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단일 정체성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 수지 자문역이 로힝야족 학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는 태도 역시 자신이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의 지지층이 버마족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수지 자문역은 집권 전인 2013년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공포는 무슬림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교도들에게도 있다”며 “무슬림의 힘이 매우 강하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수지 자문역은 소수민족 차별정책에 대해 일관된 지지를 보인 것이다.
이처럼 뿌리 깊은 인종·종교갈등이 불거지면서 문민화와 함께 고조되던 미얀마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도 꺾이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미얀마 민주화 이후 미국이 제재까지 전면 해제하며 경제가 급격히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실제로 거둬들인 성적은 실망스러운 수준이라며 종족분쟁 해결 없이는 경제성장도 요원하다고 수지 자문역을 직접 비판했다. 실제 민주화가 이뤄진 지난해 미얀마의 경제성장률은 6.3%로 군부독재기인 2015년(7.3%)보다 부진했으며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도 2016~2017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66억5,000만달러로 전년의 94억8,000만달러에 못 미쳤다.
일각에서는 수지 자문역에게 ‘버마족만의 민주주의’가 아닌 소수민족까지 포용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라고 제언하지만 이는 70년간 이어온 민족·종교 분열상에서 버마족과 소수민족의 이해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이코노미스트는 “(버마족) 정부군은 수지 자문역이 반란군의 요구를 너무 많이 들어줄 것으로 우려하고 소수민족들은 수지 자문역을 버마 민족에서 내보낸 지도자로 보고 있다”며 “민주주의 체제에서 지도자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제언했다. 당장 수지 자문역 앞에는 로힝야족 문제를 풀기 위해 버마족의 또 다른 공포심을 누그러뜨려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