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48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미국·유럽 등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 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이 건국을 준비 중인 이스라엘로 모여들었다.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러브콜에 응한 결과다. 벤구리온 총리는 로버트 오펜하이머 같은 독일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만든 것을 보고 유태인 과학자들로도 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핵개발에 시동을 건 이스라엘은 핵시설을 건립한 지 약 10년 만인 1966년 첫 핵무기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도 벤구리온 총리처럼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 군 당국자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실시 이후 미국 내에서 전술핵의 한국 재배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 전술핵이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가 독자 운용하지 못한 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군이 유사시 독자적으로 전술적인 ‘결심-타격’을 단행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북한이 심리적 압박을 느낄 것”이라고 독자 핵개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일본과 핵개발 발맞춰 리스크 분산=물론 우리나라가 이스라엘과 같은 핵개발 절차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불가능하다.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돼 있다. 물론 NPT 가입국이라도 비상사태로 위태로울 때 자위적 차원에서 탈퇴할 수 있지만 이는 조약상의 조항일 뿐 다른 협정국들이 인정하지 않을 경우 NPT에서 탈퇴했던 북한처럼 강력한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또 우리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의 정기적인 핵시설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몰래 핵물질을 빼내 핵무기를 보유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스라엘처럼 결단하되 인도와 같은 외교적 전략으로 추진해 경제 제재를 최소화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게 핵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도는 1950년대 초부터 핵을 개발했으나 미국의 은근한 지원 속에 약 2년 미만의 경제제재만 받고 말았다. 한국은 인도처럼 미국과 교감하며 핵 자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과거 사례를 보면 최강대국인 미국이 용인하면 사실상 국제사회도 제재를 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다만 중국은 최근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에서 보듯 독자적으로 우리나라에 강력한 경제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려면 일본과 핵개발을 공동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두 나라가 전 세계 교역량에서 갖는 비중을 감안할 때 중국도 한일 두 나라와 교역을 끊거나 줄이면 엄청난 경제적 내상을 입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이 핵무장을 하면 일본도 도미노식으로 핵개발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일본을 말릴 수 없다면 공조해 외교적·경제적 위험을 분담하자는 뜻이다.
◇4대 핵개발 원칙으로 명분 세워야=이때 4대 원칙으로 국제적 비난을 최소화하면서 정치적·외교적 압박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핵무장의 자위성, 한시성, 비확산성, 투명성이다. 한국의 핵 무장은 오로지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성격이며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우리나라도 함께 핵을 없애는 한시적 성격의 핵개발이라는 의미다. 또 한국 핵기술이 불량국가 등에 흘러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하는 한편 핵개발로 인한 환경오염 등을 막고 주변국에 피해가 없도록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외교 당국자는 “오로지 북한을 향한 자위적 성격의 핵무기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개발한 핵의 투발수단이나 위력 등을 제한하겠다고 천명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고 전했다.
◇경제적 컨틴전시플랜도 함께 가야=다만 이 같은 다양한 방안에도 짧게는 수개월의 경제적 압박을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해당 기간 우리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컨틴전시플랜도 함께 준비해야 핵 자주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외환보유액 확충, 핵개발을 공동으로 하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체결, 전략물자 등의 비축량 확대, 중국 등 투자자산의 사전 헤징 및 현지 진출기업 보호수단 마련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