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각국 대표들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기후협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신(新)기후체제’로 불리는 파리기후협약의 주요 내용은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전에 비해 2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각국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2도일까. 이는 다수의 기후학자가 지구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이전과 달리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하기 때문이다. 티핑포인트는 어떠한 현상이 처음에는 서서히 진행되다가 돌연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는 임계지점을 의미한다. 탁자 위의 컵을 천천히 밀면 한동안은 조금씩 밀려갈 뿐이지만 탁자 끝에 도달했을 때는 작은 힘에도 탁자 밑으로 추락하게 되는데 이 탁자 끝 지점을 티핑포인트라고 일컫는다.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초래할 결과는 테이블 위의 컵을 밀듯이 지구의 기후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지구의 기후는 해양·대기·삼림·지면·해빙 등으로 이뤄진 기후 시스템 내의 여러 가지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 활동에 따른 온실기체 증가 같은 외부적 힘이 가해지면 기후변화를 가속하려는 힘과 변화를 막으려는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점진적으로 천천히 변하게 된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가속하려는 한 방향의 힘이 일방적으로 계속되면 균형이 무너지게 되는 임계점을 만나게 되는데 이 경우 새로운 균형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태로 급격하게 변하게 된다. 지구의 기후에서 예상되는 이러한 임계점을 ‘기후변화 티핑포인트’라고 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티핑포인트의 개념이 생소하고 가끔 재난영화에서나 등장하지만 지구 전체의 역사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의 기후 티핑포인트를 지나왔다. 일례로 지금으로부터 1만2,800~1만1,600년 전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라는 소빙하기가 있었는데 이는 온난화가 진행되던 수십년 사이에 온도가 급격히 하강하면서 시작됐다. 이 시기가 끝나는 과정에서는 10년 사이에 지구 온도가 갑자기 10도 이상 오르는 더 급격한 기온변화가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 강도가 산업화 이전 시기에 비해 100년 동안 현재 1도가량 증가한 것과 대비하면 실로 엄청나고 급격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영화 ‘투모로(The day after tomorrow)’에 나온 급격한 한랭화는 이 시기의 변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마지막 빙하기 동안에는 ‘단스가드오슈가 이벤트’로 알려진 급격한 온난화와 한랭화가 25차례나 반복해서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지구 역사상으로는 수차례의 급격한 기온변화와 이로 인한 생태계 대변화가 일어났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기후변화는 지구가 천천히 반응하는 점진적 기후변화를 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력은 점진적 기후변화와 매우 다르다. 점진적 기후변화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요구되지만 적응에 대한 시간이 어느 정도 주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희생이 경제적 비용에 국한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가 우리 사회의 적응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면 이는 엄청난 혼란과 함께 사회경제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미래의 위험을 더욱 강화하는 것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한 ‘무지와 무시’일 수 있다. 많은 과학적 근거에도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적응 전략 및 정책은 급격한 기후변화의 가능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추진돼왔다. 국가 정책의 방향성은 과학계의 연구 방향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지금의 이러한 ‘무지’는 자연스레 급격한 기후변화에 대한 ‘무시’로 귀결돼 미래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의 선택은 기후변화를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생각하는 무지와 무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래 인류의 안전보다 자국 산업의 이익이라는 눈앞의 달콤한 과실을 우선시한 선택은 지구라는 컵을 탁자 위의 티핑포인트로 밀어 넣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과연 탁자 위 어디쯤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