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공들여 만든 바이오시밀러, 다국적사 특허장벽에 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셀트리온 등

미·유럽 판매허가 불구 출시못해

소송·진출전략 등 정부 지원 필요

수년째 글로벌 의약품 매출액 1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 제약사 애브비의 대표 효자상품 ‘휴미라’. 지난 한해에만도 무려 160억달러(약 18조원)어치가 팔린 이 블록버스터 의약품은 지난해 말 미국 내 핵심특허가 만료될 것으로 예정돼 올해부터 바이오시밀러(복제약) 기업들의 거센 도전에 맞닥뜨릴 듯했다. 실제로 경쟁은 치열해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로 미국·유럽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은 제품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임랄디’를 포함해 3개에 이른다. 하지만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는 휴미라의 복제약은 아직 하나도 없다. 100건 이상의 관련 특허로 무장한 애브비가 특허소송 등 강력한 방어전략을 펴며 시밀러 제품 출시를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외신 및 바이오 업계 등에 따르면 글로벌 시판 승인을 받은 바이오시밀러 제품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시장이 무르익고 있지만 다국적제약사들의 철옹성 같은 ‘특허 장벽’이 걸려 만개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연간 69억달러어치가 팔리는 항체 항암제 ‘아바스틴’의 첫 바이오시밀러 ‘엠바시’의 시판 허가를 내며 현지에서 팔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제품 수를 7개로 늘렸다. 불과 한 달 전 휴미라의 두 번째 시밀러 ‘실테조’도 허가를 받는 등 인허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015년 3월 첫 바이오시밀러 제품 ‘작시오’ 이후 두 번째 제품인 셀트리온의 ‘인플렉트라’가 나오기까지 무려 1년이 걸렸지만 이후에는 평균 3~4개월에 1개꼴로 시판 승인이 나는 추세다.

하지만 공들여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공룡 다국적제약사들의 철벽같은 특허 방어로 소비자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휴미라의 미국 특허는 2016년 말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애브비는 추가 특허들을 근거로 오는 2022년까지 독점판매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허 방어가 워낙 촘촘해 2022년까지는 시밀러 출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토로했다.



바이오시밀러는 세포나 조직·호르몬·단백질 등 생물에서 유래한 물질을 바탕으로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의 약효를 모방한 복제약을 의미한다. 화학·합성약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는 의약품 시장에 인체 부작용을 크게 줄이고 효능을 높인 바이오의약품이 대세가 된 역사도 짧지만 복제약의 역사는 더욱 짧다. 미국보다 앞서 바이오의약품을 도입하기 시작한 유럽 시장에서도 첫 시밀러 제품은 2006년에야 나왔다. 제품 출시 이후로도 얼마간은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 실제 의료계에서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세계 각국 정부의 노력이 이어지며 오리지널 대비 저렴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효능과 안전성에 엄격한 태도를 유지해온 미국은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비싼 약값 등이 사회문제로 거론되자 2015년부터 대안이 될 바이오시밀러를 본격적으로 주목해 FDA의 문턱을 낮추기 시작했다. 유럽 보건당국의 경우 바이오시밀러의 부작용이 거의 발견되지 않으므로 오리지널 대신 처방할 것을 적극 권하는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유럽의약품청(EMA)이 올해 4월 말까지 시판 승인한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총 28개에 달한다. 지난달 EMA의 시판 승인을 받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임랄디(휴미라 바이오시밀러)’와 연내 승인될 것으로 기대되는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의 복제약 ‘온트루잔트’를 포함하면 올해 중 30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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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 제품 중 일부는 미국·유럽 보건당국의 깐깐한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통과했음에도 출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국적 제약사의 강력한 특허 방어 전략 때문이다. 일례로 암젠은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엠바시’의 출시일정 등을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오리지널 약 ‘아바스틴’의 미국 특허는 2019년 만료될 예정이지만 소송 등에 휘말릴 경우 더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암젠은 실제로 지난해 말 ‘휴미라’의 미국 특허 만료시기에 맞춰 바이오시밀러 ‘암제비타’의 FDA 승인을 얻어냈지만 곧바로 애브비가 제기한 특허소송에 휘말려 제품 출시를 무기한 늦춘 상황이다. 8월 말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인 ‘실테조’의 미국 시판 허가를 얻어낸 베링거인겔하임도 애브비로부터 “74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당했다. FDA에서 승인받은 바이오시밀러 7개 제품 중 현재 3개만 미국 시장에 출시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다국적제약사들이 마음먹고 특허소송을 진행한다면 솔직히 국내 업계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복제약의 경우 시장 첫 출시 제품인 ‘퍼스트무버’ 전략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미국에서는 특허소송 등의 문제로 공룡 제약사들의 행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 등 현재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선점한 국내 기업들이 계속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특허소송·전략 등과 관련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바이오와 셀트리온이 글로벌 시장에서 얻어낸 시판허가 건수는 10여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승인 건수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특허 관련 전략만 충분히 수립한다면 현재의 지위를 지켜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기존 특허를 깰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이 요구되고 장기적으로는 바이오신약 개발과 관련해 ‘휴미라’ 같은 특허 방어전략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국내 기업의 규모 등을 볼 때 개별적으로 바이오의약품 특허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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