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자율투표 방침 속에 소속의원의 과반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이로써 정부·여당은 사상 초유의 사법부 공백 사태를 피하는 동시에 숨 가쁘게 이어진 인사 정국을 마무리하면서 향후 국정운영의 안정적인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고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 출석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임명동의안 통과에 필요한 가결 정족수(150명)보다 10명이나 많은 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 11일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 부결 사태 직후 열흘 만에 국회에 상정된 김 후보자 인준안이 무사히 통과되면서 헌재소장과 대법원장이 동시에 비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부 공백 사태는 피하게 됐다.
표결 결과는 가결 정족수를 비교적 여유 있게 넘어섰지만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쉽사리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때문에 여야 모두 오후2시로 예정된 인준안 투표 직전까지 의원총회를 열고 막판 득표전과 내부 표 단속에 나서며 총력전을 펼쳤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야당의 협조를 호소했다. 추미애 대표는 이날 오전으로 계획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회동이 무산되자 곧장 김동철 원내대표를 찾아가 김 후보자 인준 협조를 당부했다. 김 원내대표가 악수만 하고 자리를 뜨려 하자 추 대표는 김 원내대표를 쫓아가 팔짱을 끼면서 인준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호소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협력적 동반자 관계인 국민의당에 특별한 협조를 마음 다해 요청한다”며 구애 메시지를 보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야당들은 김 후보자에 대한 반대 당론을 굽히지 않으며 맞섰다.
김 후보자 인준안 처리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국민의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의원들의 자율투표 방침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지원·정동영 의원 등 당내 중진들이 권고적 당론 채택을 주장하는 등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기도 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소속의원 40명 전체를 상대로 나름대로 파악해본 결과 반대보다는 찬성 의견이 다소 많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전원 반대하더라도 민주당 내에서 이탈표가 전혀 없다면 김 후보자는 가결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조심스럽게 가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투표함을 열어본 결과 김 후보자 인준안 찬성을 주장해온 민주당과 정의당 등 130표를 제외한 최소 30표가 야당에서 넘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 절반 이상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미다. 표결을 앞두고 여당 지도부가 한껏 몸을 낮춘 데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하는 등 읍소작전을 펼친 것이 국민의당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또 무기명 투표의 특성상 반대 당론을 정한 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일부 이탈 표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여당은 대법원장 인준안 처리로 정국의 발목을 잡아온 인사 낙마 도미노를 차단하면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김이수 후보자에 이어 김명수 후보자 인준안까지 무산될 경우 정부·여당으로선 정국의 주도권을 야당에 빼앗기면서 정권 초기의 개혁 동력이 급격히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표결에서도 어김없이 캐스팅보트의 존재감을 과시한 국민의당을 포함해 야당과의 협치 없이는 원활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사실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민주당은 인준안 통과 직후 대변인 논평을 통해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야당의 협력으로 인준안이 가결됐다는 점에 대해 감사드린다”며 야당에 공을 돌렸다. 반면 한국당은 사법부의 코드화와 좌편향을 막지 못했다며 “국민께 사죄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우리 의원들이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위한 결단을 내려준 것”이라고 자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