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이규진 성장기업부장 sky@sedaily.com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중심으로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혁신이 진행될 겁니다. 특허청은 대한민국이 아이디어와 첨단·융합 기술을 통해 혁신 성장을 할 수 있도록 ‘강하면서도 유연한’ 특허 행정을 펴나갈 계획입니다.”
성윤모(55·사진) 특허청장은 지난 22일 서울 역삼동 특허청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지능형 로봇 등 기존 특허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신기술이 출현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의 고품질·원천 특허를 확보하고 관련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보호·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성 청장은 “과거 우리나라 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면서 기업이나 대학, 연구소의 특허 출원 건수가 큰 폭으로 늘어 세계 4위 수준에 올라섰다”며 “앞으로는 단 하나의 특허라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강한 특허’가 될 수 있도록 특허 출원 단계에서부터 심사·등록에 이르기까지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창의적인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기술 탈취와 아이디어 도용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3배까지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불공정한 행위를 근절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최근 극심해지고 있는 해외 시장에서의 국내 기업 브랜드 도용과 관련해서는 사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과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지적재산권(IP) 보호에 힘쓸 계획이다.
지난 7월 제25대 특허청장에 취임한 후 국내 언론과 첫 인터뷰에 나선 성 청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지식재산 정책의 주무부처인 특허청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초 발간된 세계경제포럼(WEF) 백서를 보면 ‘강하고 유연한 법률체계(Robustness and flexibility of legal system)’가 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4대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중요해졌다”며 “이를 특허 행정에 얼마나 구현할 수 있느냐에 따라 국내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특허는 보유자에게 20년간 독점적인 사용권을 주는 대신 아이디어를 공개해 새로운 기술 진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적”이라며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국내 기업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핵심 기술들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고 보호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특허는 보유자의 독점적 지위만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궁극적인 목적인 새로운 기술의 속도가 더뎌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보호 정책을 펴면 다양한 주체의 창의적인 개발 욕구가 사라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른바 ‘특허의 딜레마’다.
AI와 지능형 로봇, IoT 등 다양한 신기술이 출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들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 청장은 “지난달부터 ‘4차 산업혁명 정책 비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강하고 유연한 특허가 나올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이르면 11월 초에 종합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4위지만 핵심·원천특허가 부족해 특허의 질적 수준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글로벌 특허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식재산권 무역 수지는 적자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 청장은 재임 기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그는 “그동안 특허출원 건수 위주의 양적 성과에 치중해 특허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돈이 되는 고품질 특허 확보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연구개발(R&D) 단계부터 우수 기술을 특허로 권리화하는 과정까지 특허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복안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특허 분석을 통해 원천·핵심 특허 선점이 가능한 유망기술을 발굴해 정부와 민간 R&D에 활용하도록 제시하고 우수기술이 쉽게 사장되지 않고 강한 특허로 연계될 수 있도록 고품질 특허심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성 청장은 “20일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5대 신기술 분야로 IoT, AI, 빅데이터·클라우드, 3D 프린팅, 지능형 로봇 등을 제시했다”며 “이들 분야에서 IP를 중점적으로 창출해 활용할 수 있도록 R&D 지원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향후 정책 방향을 내비쳤다. 실제 특허청은 중소·중견기업이 제품 R&D 단계에서부터 특허 개발을 고려할 수 있는 ‘IP-R&D 전략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전 세계 특허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중소·중견기업이 해외 경쟁사의 핵심 특허를 피해서 우수 특허를 확보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전략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특허청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200 기업의 R&D 과제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창출된 우수특허 수는 미지원 과제 대비 2.1배 많았고 미국·유럽·일본 특허청에 동시 출원한 특허 수도 3.9배 높았다.
특허 품질 향상을 위해 특허청이 풀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선진국의 특허청 대비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특허청의 인력 확충 문제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특허 심사처리 기간은 평균 10개월로 유럽특허청(EPO)의 9.4개월, 일본의 9.5개월과 비슷하다. 하지만 1인당 심사처리 건수는 221건으로 57건의 EPO, 73건의 미국, 164건의 일본보다 월등히 많다.
성 청장은 “2000년대 초반 심사인력이 100% 증원된 후 2006년부터 최근 10년간 특허 심사권 정원은 714명에서 836명으로 17% 정도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특허 심사 품질 제고 차원에서 관계부처와 수시 직제 요구, 소요정원 요구 등을 통해 심사 인력을 증원하려고 노력했지만 충분한 증원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심사 처리 기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심사 품질을 끌어 올리려면 인력 확충은 필수적”이라며 “앞으로 일자리 창출 등의 차원에서라도 관계부처와 적극적인 협의를 통해 심사 인력을 늘려나가겠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동료 심사관과의 협의심사,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공중심사 등을 통해 현 조직 체계 안에서 심사 품질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 청장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면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K-브랜드 도용과 관련해 지식재산 주무부처로서 특허청이 측면 지원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성 청장은 “최근 해외 온라인 위조상품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알리바바 등 사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 게시물 삭제 등 위조상품 유통 차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수출과 투자 규모를 고려해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추가로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지식재산 전문가를 활용해 수출 전 특허 분쟁 가능성과 예방 방안을 도출하고 경고장·소송 대응전략 등을 중소·벤처기업에 제공할 것”이라며 “올해 220건 수준인 지식재산 소송보험 가입도 2022년까지 1,000건으로 확대하고 소송보험 가입 시 지식재산 분쟁 대응 법률비용의 70%를 보상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허청은 지난 20일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탈취하는 행위에 대해 입증된 손해액의 3배 한도 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성 청장은 “일각에서는 징벌 손해배상 한도가 너무 낮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민사소송법과의 충돌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기술탈취나 아이디어 도용이 나쁜 범죄라는 것을 기업들이 인식하게 되면서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언급했다. 손해배상액도 중요하지만 제도 도입을 계기로 악의적인 관행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성 청장은 “특허는 궁극적으로 기술이전과 사업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과 연구기관들이 여전히 논문 중심으로 R&D를 수행하고 특허출원 건수와 같은 양적 지표로만 R&D 성과를 측정하는 현실은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학과 연구기관들의 특허 활용률 제고를 위해서는 특허청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각 기관의 자발적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특허 개발을 위한 특허가 아닌 특허가 산업과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돈을 벌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리=서민우기자 ingaghi@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63년 대전 △198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2001~2003년 일본 경제산업성 파견 △2008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팀장 △2009~2012년 주제네바대표부 공사참사관 △2013년 지식경제부 중견기업정책관 △2016년 산업통상자원부 정책기획관, 대변인 △2017년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2017년 25대 특허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