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김영란 前 대법관이 바라본 '김영란법 1년']"3·5·10기준 숫자논쟁 안타까워…공직자 사익추구 방지 필요

부정청탁 금지 포괄적 정의했지만

국회서 15가지 유형으로 협소화

法 시행전 세밀한 대책 세웠어야

잘못된 관습 고치는 계기 됐으면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2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걸어가고 있다. /대전=권욱기자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2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걸어가고 있다. /대전=권욱기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28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연착륙하고 있으니 긴 호흡으로 봐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야당, 음식점, 화훼·농축산수산 업계 등에서 주장하는 김영란법 개정이 공론화될 경우 공직자(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 포함)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측에서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초과해 받을 수 없도록 돼 있는 것과 관련해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권익위가 (개정을) 알아서 할 일”이라며 기준 상향이 이뤄지더라도 수용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대신 당초 자신이 강조했던 공직자의 사익추구 방지를 위한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입법 과정에서 빠져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되살려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부정청탁 금지조항도 원안에서 포괄적으로 정의해 ‘상식의 잣대’가 통하도록 했으나 국회에서 15가지 유형으로 협소화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2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법의 원안을 만든 산파로서 법 시행 1년을 되돌아봤다. 그는 우선 최근 불거지고 있는 ‘3·5·10’ 한도 상향 논란에 관해 “국민의 90% 가까이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있지만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며 정부가 시행령으로 정한 만큼 권익위가 여론을 수렴해서 정하면 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그는 그동안 “공직자라도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한우나 굴비도 100만원이 넘지 않으면 받는 데 제한이 없다”며 ‘2018년 12월31일까지 타당성을 검토해 개선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령 45조를 들어 원칙적으로 그때까지는 ‘3·5·10’ 조항을 손을 안 대는 게 좋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법의 취지와 시행에 대해 “공무원들의 경우 금품수수나 접대가 원칙적으로 안 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3·5·10) 금액 제한 내에서 하라는 것이었다”며 “그 안에서도 허용하는 게 원칙이 아니고 예외라는 것인데 예외가 원칙인 것처럼 됐고 숫자 논쟁으로 가버려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권익위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여론을 수렴해 알아서 하면 된다”며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것으로 제가 정한 것이 아니고 제가 간섭할 일도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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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는 “공무원들의 경우 원래는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 대통령령으로 더 엄격하게 ‘3·3·5’ 원칙을 세웠는데 어지간히 안 지켜졌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식당에서 2만9,900원짜리 영란세트를 보면 죄송하기도 하고 음식점이나 화훼 업계, 농수산축산물 업계에서 정말 힘드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논의를 거쳐 법이 통과된 뒤 1년 6개월 뒤 시행됐는데 정부가 여러 대책을 수립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고 토로했다.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 원안에 들어 있던 이해충돌 방지 조항에 대해서는 진한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는 “법 제정 당시 공직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는 이해충돌 방지 조항이 단순하지가 않고 당시 세월호 사건도 있고 해서 (부패척결을 위해) 먼저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를) 하자고 해서 이해충돌 방지가 더 핵심인데도 국회에서 이를 빼고 법을 통과시켰다”고 회고했다.

김 전 위원장은 부정청탁 금지도 당초 원안에서 큰 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했으나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 유형으로 좁혀지며 구멍이 뚫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15가지 유형을 부정청탁이라고 나열식으로 해놓았는데 그 외 부정청탁이 많아 개정이 필요하다”며 “청탁의 성격을 해석해 뭐는 되고 안 되고 하는데 유형이 너무 복잡해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당초 명칭을 ‘공직자의 사익추구방지법’으로 생각했는데 공직 가치와 사익이 충돌하는 부분에서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그때는 생각 못 했지만 최순실 사건을 보면서 공무원이 기업에 청탁하는 것도 못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영란법이 공직을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는 취지니까 앞으로 법이 개정될 경우 큰 그림 속에 재추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부패를 없애는 것이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는 연구도 많은데 과거의 잘못된 관습을 바꾼다고 봐주셨으면 한다”며 “과거 공직생활을 하며 청탁이 만연하고 거절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겪고 또 목격했는데 이제는 ‘이게 괜찮은가’라고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며 웃었다. 대법관 출신인 그는 현재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석좌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대전=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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