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철수 칼럼] 지나간 일은 탓하지 마라

오철수 논설실장

안보위기 등 나라 사정 어려운데

과거 청산만 매달리면 희망없어

미래 향한 청사진부터 제시해야

오철수 논설실장




춘추시대 노나라 임금 애공(哀公)은 공자의 제자 재아(宰我)에게 ‘사(社)’에 대해 질문을 했다. ‘사’는 천자가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말하는데 제단 주위에는 나무를 심게 돼 있었다. 재아는 임금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다. “하후씨는 사에다 소나무를 심었고 은나라는 잣나무를, 주나라는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밤나무를 심은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재아는 밤나무를 나타내는 ‘율(栗)’을 두렵다는 뜻의 ‘율(慄)’과 연관지어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 위해 주나라가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하·은·주 세 나라가 각기 다른 나무를 심은 것은 그 지방의 토질에 맞는 나무를 심은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재아가 혼자 엉뚱한 해석을 하고 만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가뜩이나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애공이 재아의 말을 그대로 믿고 공포정치를 할까 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에 재아에게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이미 이뤄진 일은 말하지 않고(성사불설·成事不說), 끝난 일은 간하지 않으며(수사불간·遂事不諫),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다(기왕불구·旣往不咎).” 공자는 재아가 비록 큰 잘못을 범했지만 뱉어버린 말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계속 들춰내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에 ‘말은 깊게 생각하고 해야 한다’는 교훈을 담아 점잖게 꾸짖되 재아의 잘못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고사는 현재의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적폐청산 작업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첫 번째 국정과제로 적폐청산을 제시한 후 부처마다 태스크포스(TF)나 각종 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이전 정권의 문제점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통일부까지 나서 댓글 사건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국정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조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화살이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 정부까지 겨냥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을 비롯해 자원외교·방산비리와 관련한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여당은 물론이고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해 보수정권 9년 동안의 실정을 모조리 심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는 검찰 조사에서 이미 결론이 난 ‘BBK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재수사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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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나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잘못되는 일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잘못이 있으면 사안별로 바로잡으면 된다. 이 과정에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면 벌을 주면 된다. 국정교과서 사태만 하더라도 그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더 나은 교과서를 만들어주면 된다. 굳이 적폐청산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요란을 떨 일은 아니다. 이전 정부에 대한 망신주기는 당장 지지세력의 속은 시원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불러와 진흙탕 싸움을 초래하게 된다. 야당을 중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 사건을 재수사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박한 국면이다.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부딪치면서 안보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한 발 삐끗하면 바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노동·금융개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국가 경쟁력은 10년째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조차도 선진국에서 10년 넘게 경쟁력 순위가 하락하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라며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처가 늦어지면서 성장동력 발굴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런 때에 미래를 설계하기에도 빠듯한 마당에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우리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공자가 큰 잘못을 저지른 재아를 탓하지 않은 것은 이미 지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쯤해서 과거 청산의 유혹을 떨쳐버리고 미래로 나가기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실행 계획을 짜는 데 전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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