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토요워치] 가족의 재구성-불황·고령화·개인주의에 흔들리는 가족

20~30대 결혼 기피...'황혼 이혼'도 급증

직장인 40% "올 추석 귀향 계획 없다"

가족해체 현상 확산...안전망 구축 절실

지난 27일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골목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송은석기자지난 27일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골목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송은석기자


지난 8월17일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45세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의 사망 시점은 지난해 11월쯤으로 밝혀졌다. 무려 9개월 동안 아무도 그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발견이 늦은 탓에 시신은 미라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고인은 2004년부터 쭉 혼자 살아왔고 가족과 왕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와 같은 무연고 사망, 이른바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희귀한 현상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 749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5년 1,245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급증하는 고독사는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족해체 현상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A씨가 함께 사는 가족이 있었거나 하다못해 가족과의 끈이라도 유지했더라면 수개월 동안 죽음이 방치되는 비극은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족해체 현상은 빠르게 번지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서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는 2015년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 유형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00년만 해도 전체 가구 중 15.5%에 불과했다. 하지만 매년 증가해 지난해 27.9%까지 훌쩍 뛰었다. 반면 2000년에 31.1%로 가장 일반적이었던 4인 가구는 지난해 18.3%로 떨어졌다.



가족 구성의 기본 요소인 결혼이 흔들리는 현상도 뚜렷하다. 20~30대 사이에서는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거나 동거를 하겠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으며 보수적인 성향의 노인들마저 이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황혼이혼’은 9,011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결혼을 유지하되 사실상 부부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졸혼(결혼을 졸업한다), 휴혼(결혼을 쉰다) 등이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살지 않으면 부모·자식, 형제간 교류라도 많아야 할 텐데 이마저 피하는 사람들이 느는 추세다.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이는 전통마저 깨지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다. 실제 25일 취업 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83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9.4%가 ‘올해 추석에 귀향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가족해체 현상은 왜 심해지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오랜 불황으로 삶이 팍팍해진 것을 가장 주된 이유로 꼽는다. 1인 가구 증가는 청년들이 결혼을 기피해 가정 자체를 이루지 않는 탓이 크다. 그런데 결혼 기피의 원인을 다시 파고들면 취업난에 주거난, 높은 양육·교육비 등 경제적인 이유가 자리 잡고 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개인의 경제적 여건이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도 힘이 부치다 보니 가정을 꾸릴 여력이 생기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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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부모를 모시지 않는 경향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살림살이가 팍팍해 부모를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까지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방치되는 노인 문제는 고령화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가면서 노부모를 부양해야 할 기간과 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높아지는 개인주의 성향도 가족해체에 한몫했다.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되면서 가족을 꾸리면서 따라오는 각종 의무를 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높아지는 개인주의 성향은 결혼을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불황과 고령화·개인주의라는 3각 파도에 휩싸여 가족해체 현상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불행과 각종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적 측면에서도 커다란 경쟁력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가족해체 현상이 일찍 나타난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7년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고령사회 백서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화율은 지난해 10월 기준 27.3%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65세 이상 노인과 자녀의 동거 비율도 1980년 69.0%로 70%에 육박했으나 2015년에는 39.0%로 급격히 감소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아지면서 고독사 사례도 매해 증가해 2011년 2,618건에서 2015년 3,127건으로 늘었다. 60세 이상의 노인 자살도 2009년부터 감소 추세에 있지만 2016년 8,871건으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고령화와 가족해체는 노인 대상 범죄로도 이어졌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살인미수 사건 중 친족 간 살인 비율은 55%로 1979년(44%) 이후 증가 추세에 있다. 일본 정부는 가족해체와 노인 소외의 근본 요인을 은퇴 후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고용구조 때문으로 보고 노인 계층의 취업 확대를 100세 사회를 대비한 ‘일하는 방식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약해진다는 현실은 받아들이되 가족해체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독거노인 등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사실혼·동거 등 결혼을 대체하는 사회관계도 현실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정책을 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서민준기자 연승·변재현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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