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부터 본격적인 연준 자산 축소에 돌입한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본격적인 ‘돈 죄기’의 시대가 열리며 양적 완화(돈풀기)에 진정한 종언을 고했다는 뜻이다. 금융위기 이후 불어난 중앙은행의 보유자산을 줄이는 것은 연준이 최초로,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이달 만기채권 재투자를 100억 달러 가량 중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향후 몇 년에 걸쳐 보유 자산을 축소하기로 했다. 그간의 양적완화로 연준의 보유자산은 4조5,000억달러(약 5,000조 원)로 불었다.
앞서 연준이 공개한 정상화 시나리오에 따르면 연준은 이달부터 연말까지 석 달 동안 만기를 맞이하는 국채와 주택저당채권(MBS)의 재투자를 중단하는 방식으로 매달 100억달러(약 11조3,000억원)씩 보유자산을 줄인다. 이후 3개월마다 축소 물량을 100억달러씩 늘려 국채 300억달러·MBS 200억달러 등 총 월 500억 달러까지 축소액을 높인다.
이에 따라 4개월째인 내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월 200억달러(국채 120억달러·MBS 80억달러), 4~6월은 300억달러(국채 180억달러·MBS 120억달러), 7~9월은 400억달러(국채 240억달러·MBS 160억달러), 10~12월은 500억달러(국채 300억달러·MBS 200억달러)까지 재투자가 중단된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유지된다면 연준 자산은 오는 2021년 3조달러 대로 줄어들게 된다. 연준은 유동성 잔치를 즐겼던 시장이 받을 충격에 대비해 올 초부터 자산축소 계획을 시사했으며 축소 규모도 월 100억달러에서 시작해 분기마다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신중한 조치를 택했다.
이밖에 지난달 연준은 자산 축소 계획 실시를 발표하면서 물가 부진에도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나 올리며 연내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에 다시 무게를 실었다. 다만 연준 위원들은 내년에 세 차례, 2019년 두 차례, 2020년 한 차례 등 단계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면서도 장기금리 전망치는 종전의 3.0%에서 2.75%로 낮춰 금리 인상 폭이 당초 예상보다는 줄어들 것임을 암시했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자산축소라는 ‘쌍끌이 긴축’이 본격화되며 미 국채금리 상승 등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이 진정한 의미의 긴축에 나서면서 이제껏 양적 완화에 동참했던 주요국 중앙은행도 돈줄 죄기로 돌아설 시점을 저울질하게 됐다.
물론 출구전략의 속도는 전 세계 주요국 중 연준이 가장 빠르다. 연준이 월별 채권 매입액을 줄이는 ‘테이퍼링’에 착수한 것은 지난 2013년 12월. 이로부터 한 해 뒤인 2014년 10월 채권 매입을 중단하며 1차 양적 완화 종료를 선언했다. 그동안 부풀기만 했던 연준 자산이 이때부터 본격적인 팽창세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후 1년여 뒤인 2015년 12월에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첫 금리인상까지 실시했다. 1년여 뒤인 2016년 12월 연준은 0.25%포인트를 추가로 인상했고, 올해 3월과 6월에 이어 12월에도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미국에 이어 긴축 행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은 건 유럽중앙은행(ECB)이다. ECB는 오는 26일로 예정된 통화 정책 회의에서 구체적인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CB 역시 2015년부터 양적 완화로 국채 사들이기에 나서면서 현재 자산이 연준보다 많은 4조9,000억 달러까지 불었다. 하지만 출구전략 속도는 미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미국이 완화축소에 이어 일찌감치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 인상에 이어 이달 기존 보유자산의 감축에까지 나선 반면 ECB는 이제야 테이퍼링 시점을 저울질하는 단계다.
ECB도 연준처럼 출구전략에 나서면서 자산 매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월간 순자산 매입액을 현행 600억 유로에서 내년 1월부터 400억∼450억 유로로 축소한다는 게 시장의 예상이다. 하지만 이미 일부 테이퍼링은 이미 시작된 셈이기도 하다. 지난 3월까지이던 자산매입 프로그램의 기간을 연말까지 9개월 늘리면서 4월부터는 매입규모를 월 800억 유로에서 600억 유로로 줄였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들이 자산 매입을 줄이거나 멈추면 대차대조표가 축소되며 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할 수 있게 된다.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낸 국가도 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지난달 통화 정책 회의에서 “수개월 내 일부 금리 조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깜짝 발표하면서 다음 후보로 급부상했다. 캐나다는 지난달 초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오른 1.0%로 인상했다. 7년간 동결했던 금리를 지난 7월 처음 인상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재차 올린 것이다.
반면 일본은행(BOJ)은 테이퍼링 여부를 놓고 모호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BOJ도 ‘아베노믹스’로 BOJ에 쌓인 중앙은행 자산이 4조5,300억 달러에 달한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물가 탓에 공식적 테이퍼링 신호는 내놓지 않았지만 ‘스텔스 테이퍼링’을 통해 은근슬쩍 자산 매입을 축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히로시 와타나베 일본 국제통화연구소(IIMA) 대표는 “일본 경제는 부양책을 축소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회복됐다”면서 “BOJ는 이미 채권 매입을 축소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