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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캔 스피크' 200만 돌파...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는 배우 나문희의 힘

구청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머니 역 맡아

진정성 있는 연기로 전 연령대 사로잡아

1961년 MBC 성우 공채 1기로 연기자길

1996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로

느즈막히 배우로서 존재감 드러내

이후 노희경 작가 작품 잇달아 출연

노희경·이제훈 "단 한 컷도 거짓 없는 연기"



관객들의 꾸준한 입소문을 타고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개봉 13일째인 지난 3일 누적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쏟아져 나온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저예산에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가 이토록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배우 나문희의 힘이 컸다.



1941년 생인 나문희는 이 작품에서 20년 동안 구청에 넣은 민원만 8,000건에 달하는 구청 블랙리스트 1호이자 ‘도깨비 할머니’ 나옥분 역을 맡았다. 옥외광고법을 어긴 주민, 분리수거 쓰레기를 낮에 내다 버리는 주민 등은 모두 옥분의 잔소리를 피해갈 수 없으며, 이들은 또한 민원 대상자다. 꼬장꼬장하기 이를 데 없는 옥분이 사는 명진구에 이보다 더 막강하게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주임이 부임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구청에서 민원을 넣으며 한 번도 번호 표를 뽑지 않고 서류를 접수했던 옥분은 민재가 부임한 첫날도 버릇처럼 그렇게 하지만 민재가 “번호표 뽑아오세요. 그런 원칙도 안 지키세요?”라고 하자 “박 주임 우리 잘 해보자”라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때부터 이들의 인연은 본격화된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는데 늘지 않자 학원에도 다니는 옥분은 다른 어린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학원에서 쫓겨나던 날 옥분은 민재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무작정 영어 선생님이 돼 달라고 조르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는 점점 가까워진다. 여기까지 옥분과 민재는 관객을 웃기며 코미디의 외피를 썼다. 그러나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를 알게 되는 민재와 관객에게 이 영화는 ‘감동’이라는 장르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코미디의 외피를 두른 영화가 ‘감동’이라는 장르로 자연스럽게 디졸브될 수 있었던 건 역시 ‘나문희 장르’라고 불리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 덕이었다. 제작자, 감독, 상대역 이제훈 모두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 역은 나문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문희는 1961년 MBC 라디오 1기 공채 성우로 입사해 연기자 생활을 시작한다. 젊은 시절 그는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는 아니었다. 그러나 1996년 노희경 작가의 MBC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 역을 맡으면서 그는 비로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굿바이 솔로’, ‘디어 마이 프렌즈’ 등 노 작가의 작품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노희경 사단’의 대표 배우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압구정 종갓집’, ‘거침 없이 하이킥’ 등 시트콤에 출연해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할머니 역할로 젊은 층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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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작가는 나문희의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누가 배우 나문희를 한마디로 말하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배우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리고 또 누가 인간 나문희를 말하라면, 저는 화면에 단 한 컷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었던 인간이라고 답할 거예요.” ‘아이 캔 스피크’에서 함께 출연한 이제훈 역시 나문희의 연기에 대해 ‘모든 테이크에서 그의 인생이 보였다“라며 그의 진정성있는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또 노 작가의 에세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에서는 나문희가 연기를 대하는 자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나문희는 언제가 노 작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너무 잘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놀지 마. 책 많이 읽어. 버스나 전철 타면서 많은 사람들을 봐. 재래시장에 많이 가. 그곳에서 야채 파는 아줌마들을 봐. 할머니들 손을, 주름을 봐봐. 그게 예쁜 거야. 대중목욕탕에 가. 대본 제 때주는 작가가 돼. 우리 자주 보지 말자. 그냥 열심히 살자, 희경 씨.”

영화는 노 작가와 이제훈뿐만 아니라 관객도 이미 나문희가 이 작품의 어느 장면에서도 거짓이었던 적이 없음을, 그리고 그의 인생을 담은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지금 이 영화 보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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