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젠 직원들은 저마다 고유한 명함을 들고 다닌다. 영문으로 회사 이름인 ‘DROGEN’만 공통으로 들어가 있을 뿐 말단 직원에서부터 이흥신 대표까지 같은 디자인의 명함이 단 한 개도 없다. 명함을 신청할 때 앞과 뒤 각각 10개의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총 100개의 다른 유형의 명함이 나올 수 있다. 지난 2015년 설립 후 현재까지 직원이 30명 남짓이니 명함 디자인이 겹칠 수 없다.
드로젠이 직원의 명함에서부터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 대표의 경영 철학과 관련이 깊다. 그는 회사의 경쟁력이 연구개발(R&D) 성과에서 나오는 만큼 각 개인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강조한다. 이 대표는 “군대 조직이라면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의 생각을 똑같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 회사는 기술이 곧 경쟁력이기 때문에 직원 한 명 한 명의 아이디어가 매우 소중하다”며 “회사 소속을 알려주는 명함에서부터 획일화를 지양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명함 디자인은 물론 색상도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어 직원들끼리 명함이 새로 나오면 서로 주고받으면서 즐거워한다”고 귀띔했다.
드로젠의 명함이 특이한 것은 디자인뿐만 아니다. 드로젠은 명함에 직원에서부터 대리·과장·부장·상무·전무·대표 등과 같은 직함이 쓰여 있지 않다. 대신 이름 옆에 자신이 하는 일을 명시해놓고 있다. 예컨대 이 대표의 명함 이름 옆에는 ‘기획(T)’이 새겨져 있다. ‘기획’은 회사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다는 의미이며 ‘알파벳 ‘T’는 군대로 치면 전술통제장교(Tactical Control Officer)와 같다. T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사진을 뜻하며 일반 직원인 ‘M’과 구별한다. 물론 회사에는 법적으로 등재된 이사들이 있지만 사내에서는 이사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한글 이름이 아닌 ‘영어 닉네임’을 부른다. 이 대표의 이름은 ‘Aron’인데 부하 직원들은 농담 삼아 그를 ‘아롱사태’로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조직문화가 자유롭고 개방적이라는 뜻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는 권위적인 유교 문화 탓에 능력이 아닌 나이로 모든 것을 규정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직원들의 나이가 전반적으로 어린데 내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조직의 소통이 불가능할 것 같아 영어 이름에 ‘님’을 붙여 호칭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미래의 드로젠을 이끌어나갈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 중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회사 설립 당시부터 그의 직계 가족이나 형제들이 회사에 관여하면 안 된다고 공식 선언했을 정도다. 이 대표는 “창업은 제가 했지만 회사가 영속하려면 조직에 로열티가 강한 직원들 가운데 능력 있는 친구들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지역·학력을 떠나 회사 발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직원이 미래에 드로젠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