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환란 20년, 한국경제 다시 비상벨]건전성 좋아졌지만 기업체질 그대로...'1위 품목' 中·日이 바짝 추격

차입금 의존도 54% → 20% 등 빚부담 눈에 띄게 감소 불구

주력기업·수출품목 변화 없고 中 쏠림현상도 갈수록 심화

매출액 증가율 11% → 8.4% 뒷걸음...영업이익률도 제자리

신산업 꽃필 수 있게 규제완화·연구개발 투자 함께 이뤄져야

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경기도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경기는 슈퍼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 심화되고 있다.  /서울경제DB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경기도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경기는 슈퍼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 심화되고 있다. /서울경제DB








지난 1997년 11월19일은 국치일로 기억된다. 나라 곳간이 텅 비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돈을 빌려야 했다. IMF는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우리에게 재정 긴축과 고금리정책을 요구했다. 당시 처방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별개로 두고 이 정책의 파장은 대단했다. 부채비율이 높던 국내 기업에 이는 사실상 파산선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30대 그룹만 놓고 보면 3개 중 2개가 빚을 갚지 못해 나가떨어졌다. 그런 혹독한 시기를 견뎠기 때문일까.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기업의 부채비율 등 자산 건전성 지표는 몰라보게 개선됐다.

문제는 그런 양적 지표의 개선에도 우리 기업의 체질개선을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증은 심화되고 있고 20년간 주력산업과 수출품목 리스트는 거의 변화가 없다. 그렇게 수출 다변화를 외쳤지만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은 중증이다. ‘건전성’ 허들을 넘고 나니 ‘성장동력’이라는 더 큰 허들 앞에서 주저앉은 형국이다. 김도훈 경희대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과거 중후 장대형 산업의 성공에 안주한 결과가 제조업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며 “신산업이 꽃필 수 있는 규제 완화, 연구개발(R&D) 투자 등이 이뤄져야 기업 체질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건전성은 개선돼도 요원한 체질개선=20년간 기업의 변화는 지표로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997년 396.5%에서 올 2·4분기 66.7%로,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 역시 54.22%에서 20.0%로 나아졌다. 기업의 빚 갚는 능력은 몰라볼 정도로 개선된 셈이다.


하지만 성장성과 수익성 지표는 정체되거나 나빠졌다. 매출액 증가율은 1997년 11.02%에서 2007년 9.28%, 2017년 2·4분기 8.4%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매출액 영업이익률의 경우 8.25%→5.88%→8.4%로 도돌이표에 가깝다. 한때 ‘엘도라도’로까지 여겨졌던 중국에 대한 수출 쏠림현상은 더 심각해졌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대중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7%로 3위였지만 지금은 23.4%로 부동의 1위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여파로 중국 시장이 망가지자 기업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다. 치밀한 전략을 갖고 중국에 접근하기보다 거대시장에 대한 환상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다 보니 소비재 업체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들이 돈을 쌓아놓고도 씨앗을 뿌리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안주하는 기업도 문제지만 투자 여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현실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20년간 주력산업·품목 변화 찾기 어려워=우리 기업이 늙어가고 있는 게 문제다. 보신주의가 만연하고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세계 시장 1위 품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출액 기준으로 국내 기업이 1위인 품목은 총 68개(2015년 기준). 그런데 우려되는 것은 지난 10~20년간 이 리스트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고 중국·일본 등 경쟁국과 점유율 측면에서 5% 미만 내의 경합관계인 품목도 40개나 된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새롭게 뜨는 ‘게임 체인저’는 없고 후발국에 따라잡히려는 제품만 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도 부동산 부양(박근혜 정권), 분배 위주의 소득주도성장(문재인 정권) 등 단기적이고 인위적 정책에 치중해왔다. 그러는 사이 산업 구조조정은 하염없이 지체돼 조선·철강에 이어 자동차도 이들 업종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위기’…안이한 인식 버려야=외환위기와 이번 위기는 모두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기업·정부의 펀더멘털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안주 의식 팽배→구조조정 미흡→산업 활기 소진→경제침체’라는 프로세스가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도 기업들의 체감과 정부의 현실 인식 사이에 간극이 작지 않다. 그런 결과가 각종 규제혁파에 미온적이고 기업에 요구만 하는 정부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들도 더 개방적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주력업종의 부진은 ‘파이 지키기’에 연연해 변화의 흐름을 놓친 측면이 있다. 김 특임교수는 “우리만의 강점을 살려 세계적 혁신기업과 연합군을 형성하는 데 주저해선 안 된다”며 “정부도 규제개혁에 반발하는 이해관계자의 조정에 적극 나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훈·김우보기자 shlee@sedaily.com

이상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