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표 격인 시민참여단이 던진 공론조사 결과는 단순히 원전 2기의 운명만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예정된 신규 원전 건설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단으로 결정되면 40년간 축적된 원전 기술 노하우가 사장돼 산업 자체가 붕괴된다. 원전과 무관한 일반시민이 한 달여 동안 ‘속성 과외’를 받고 대한민국 원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연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공론화위의 최종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든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공론화 과정에서 드러난 탈원전과 원전 지속 세력 간의 갈등과 반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참여단 제공 자료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두고 양측 진영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지역주민 사이에서도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더 큰 문제는 공론조사 결과가 오차범위 이내로 나와 공론이 모아지지 않는 경우다. 박빙의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찬반 양측의 차이는 1~6%포인트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오차범위 안이다. 공론위는 4차 조사의 찬반 의견이 오차범위 밖이라면 그 결과만을 토대로 최종 권고안을 제시하되 만약 오차범위 내라도 가급적 한쪽 방향의 결론을 담겠다고 한다. 네 차례 조사 결과의 의견분포 변화 등을 고려해 권고안을 마련한다지만 이렇게 되면 자의적이고 편향된 해석이라는 논란을 피할 길이 없다. 물론 유보 결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오차범위 내의 결과라면 현상유지, 다시 말해 원전 공사를 재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민적 공론이 모이지 않았는데도 신고리 5·6호기를 폐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자면 공론화위는 오차범위의 결과가 나오면 이것저것 잴 것이 아니라 깔끔하게 유보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정부의 공사 재개 결정은 그다음이다. 정부가 탈원전 공약에 집착하는 것은 단견이다. 탈원전의 명분과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에너지 백년대계를 허투루 결정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로서는 원전처럼 값싼 에너지원을 걷어차 버린다면 에너지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원전의 안정성이 정 의심쩍고 주민 수용성이 문제라면 노후 원전부터 설계수명이 종료될 때마다 폐로하는 길도 있다. 굳이 세계가 인정한 신형 원전부터 폐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신고리 5·6호기의 설계 모델은 안전에 관한 한 까다롭기로 유명한 유럽 인증기준을 통과했다. 미국 관문 통과도 눈앞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재생에너지는 보완재가 될지언정 대체재는 될 수 없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기술적 진전으로 경제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더라도 좁은 국토와 환경적 제약으로 적절한 부지확보마저 여의치 않다. 소음과 미관훼손으로 주민 수용성도 낮다. 신재생에너지의 가격경쟁력과 전력수급 기여도 등을 고려해 신규 원전 건설 속도를 조정하는 길도 있다. 탈원전 여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진보 성향의 정부라도 에너지 안보에 관한 한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공론조사를 탈원전 코드에 맞추려는 시도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