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도비탄과 유탄의 불편한 진실

軍 '다치지 말자' 보신주의 만연

사격장 사고 책임소재 덮기에 급급

공익제보자 되레 불이익 당하기도

부당 명령·지시 거부할 수 있어야





‘도비탄(跳飛彈)과 유탄’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군대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마찬가지다. 불과 보름여 전으로 돌아가 보자. 강원도 철원의 군 사격장 인근에서 스물 한 살 꽃다운 나이의 젊은 병사가 총탄에 맞아 죽었을 때 군이 뭐라 발표했던가. 도비탄에 의한 사망이라고 우겼다. 전역 병사들과 네티즌의 의문 제기에도 군은 미동도 없었다. 군의 태도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특별수사 지시’로 바뀌었다. 사망 원인도 바로 잡혔다. 도비탄이 아니라 조준을 빗나간 직격탄, 즉 유탄(流彈)이라는 것이다.


군이 잘못된 판단을 이처럼 빨리 바로잡은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차제에 ‘정직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세르반테스의 금언을 새기기 바란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어떤 이유에서 도비탄이라고 확신하게 됐는지,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지 파악이 필요하다. 특별수사팀은 사망한 고 이모 상병의 부소대장이 최초로 그렇게 판단한 게 전해졌다고 설명했지만 의문이 꼬리를 문다. 병사가 죽어 나가는 와중에 부소대장직을 맡은 부사관이 도비탄이라는 느낌을 가졌다고 치자. 중대장에서 사단장까지 지휘계통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인가. 누가 봐도 비이성적 판단을 헌병 수사팀은 그대로 믿었나.

지금 상황에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도비탄으로 확정됐을 때 결말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도비탄에 책임을 지울 수 없으니까. 송 장관의 특별지시가 없었다면 진실이 묻힌 채 누구도 처벌이나 징계받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도비탄은 ‘라쇼몽 효과(Rashomon Effect)’와 집단 최면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믿고 싶은 바를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확증에 빠지는 라쇼몽 효과와 고의적인 집단 최면은 군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사명감을 갖고 조직을 고쳐보려는 인재보다 소문과 평판이 나빠도 서류만 깨끗하면 진급 우선순위에 오르는 게 다반사다.


문제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도 이런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오른 ‘공익제보자 황 중령 진급 청원’의 해당 인물인 황인걸 육군 중령이 대표적인 케이스. 군 공금을 횡령한 상관은 비리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승진 가도를 달렸다. 반면 엘리트 장교로 이름 높았으나 불의를 참지 못하고 공익제보한 황 중령은 이번 정권에서도 견제에 막혀 전역할 처지다. 고위 장성의 미담 조작 사실을 폭로했던 이모 대령은 거꾸로 무고죄에 몰렸다. 이 대령에게 약속이나 한 듯 불리한 증언을 한 당사자들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일절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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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와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좋은 게 좋은 것’은 결코 좋지 않다. 두루뭉술한 보신주의와 암묵적 야합이 겉으로는 안정적으로 보여도 군을 속으로부터 망치기 때문이다. 진실과 정의를 따지기보다 적당히 살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인물들이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을까. 병사들도 이런 간부들을 속으로 조롱하기 십상이다. 암묵적 야합의 결과를 낳을 것 같았던 ‘도비탄’ 소동은 송 장관의 빠른 대처로 제 방향을 잡았지만 바로 여기에 가장 큰 적폐가 숨어 있다. 권력자의 명령과 지시가 있어야만 제대로 판단하는 조직 습성이 드러난 것이다.

군을 새롭게 고치려면 어떻게 할까. 답은 교육에 있다. 우선 상관의 부당한 명령과 지시에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사관학교와 학군단, 각종 군 교육기관에서 관련 교육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판 선거전에 댓글을 다는 데 동원된 수많은 장병 가운데 명령을 거부하거나 양심선언을 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점은 우리 군이 얼마나 경직되고 속에서 부패했는가 말해준다. 군의 문제는 군대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법규나 양심·정의라는 관점이 실종됐거나 생각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한 번 잃어버린 젊은이는 큰일을 맡았을 때 상대적으로 쉽게 비리에 빠져든다.

때로 불편하고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진실은 군대를 강하고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다. 군은 사회의 단면이며 연속선에 있다. 미래를 이끌어갈 장병들이 군에서 배우는 게 모나지 않고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라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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