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8년 실학자 황윤석의 일기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과거시험을 본 다음날 점심에 일행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배달의 역사’가 최소한 250년은 넘었다는 의미다. 물론 지금과 같은 택배 시스템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야 시작됐다. 1990년대 온라인 주문 서비스가 조금씩 싹을 틔우고 국내 최초의 오토바이 배송업체 ‘주식회사 퀵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에 퀵서비스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1997년에는 국내 최초의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가 문을 열며 온라인 쇼핑과 택배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배달의 진화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모바일 쇼핑을 즐기는 ‘엄지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올 상반기 택배 물동량은 11억1,127만개에 달했다. 이는 2009년 한 해 물동량을 뛰어넘는 수치다.
◇아침밥에서부터 그날 입을 옷까지…불가능은 없다=‘불가능은 없다’는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의 택배시장에서는 과언이 아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면 1시간 안에 집 앞으로 배달이 되고 따끈한 아침밥과 그날 입을 옷을 새벽에 받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최근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커지면서 식품 택배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국내 1위 택배업체 CJ대한통운은 이 시장을 잡고자 지난 4월 국내 택배업계 최초로 새벽 배송 서비스를 개시했다. 현재 하루 1,200~1,500상자의 가정간편식을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배송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월정액을 내면 셔츠를 매주 정기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의류 렌털 서비스도 시작했다. 동원홈푸드와 한국야쿠르트 등이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가져다주는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택배 서비스의 비약적인 발전은 택배 배송 시간의 비약적인 감소 덕분이다. 택배 초기 이틀에서 삼일 걸리던 배송 시간은 ‘익일 배송’과 ‘당일 배송’에 도달했다. 최근 들어서는 빠른 배송을 차별화 서비스로 삼으려는 업체들이 앞다퉈 3시간 이내 배송, 1시간 이내 배송, 공휴일 배송 등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편의점 GS25로 알려진 GS리테일은 최근 서울 지역에 한해 당일 택배를 시작했으며 소셜커머스 위메프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당일 도착 배송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미 온라인 쇼핑 2시간 이내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롯데슈퍼는 업계 최초로 1시간 유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머지않아 고객이 언제 어디에 있든 찾아가는 무인기 배송도 일상화할 조짐이다. 각종 규제로 국내에서는 아직 드론 배송을 시도하는 곳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드론 배송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커피전문점 코스타커피는 올해 두바이 해변에서 드론으로 커피를 배달하는 ‘드론 드롭’ 서비스를 시작했고 탄자니아 정부는 내년 초부터 혈액 등 의료용품을 드론으로 배달할 방침이다.
◇배달이 바꿔놓은 산업 지형도=배달은 많은 이들의 삶의 질을 높였지만 누군가에게는 비극이기도 하다. 배달 전쟁으로 산업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점 시장이다. 인터파크도서는 1997년 오픈 이후 업계 최초 무료 배송을 비롯해 최다 지역 당일 배송을 선보였다. 동네서점을 주로 이용해왔던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과 당일 배송에 온라인 서점으로 모여들었고 동네서점들은 줄도산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5년 말 도서만을 판매하는 ‘순수서점’의 숫자는 1,559개로 1996년 5,378개로 정점을 찍은 후 20년 새 70%가 감소했다.
택배가 불러온 환경오염 문제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을 능가하는 ‘택배 천국’ 중국에서는 지난해 무려 312억8,000만건의 택배가 오갔다. 여기서 나오는 쓰레기가 100만톤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다. 2015년 기준 중국 전역의 택배회사에서 사용한 테이프 길이는 총 169억8,500만m로 지구를 425바퀴 돌 수 있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택배 물량은 20억상자. 중국 사례를 단순 적용한다면 한국도 연간 6만톤 이상의 택배 쓰레기가 쏟아지는 셈이다.
도심 곳곳을 누비는 택배 트럭이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물류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물차 346만 대 가운데 90% 이상인 321만대가 경유 화물차다. 반면 LNG·LPG·전기화물차 등 친환경 화물차는 다 합쳐도 15만9,000대로 전체의 4.6%에 불과하다. 택배 차량은 일반 승용차나 장거리 운송 트럭에 비해 공회전 및 저속 운행이 잦아 친환경 차량 전환이 시급하지만 화물차의 친환경 차량 전환은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