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찰팀 24/7]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무언의 목격자' DNA

'완전범죄는 없다' 해결코드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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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10월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집주인 A씨(당시 34세)가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을 확보해 수사에 나섰다. 피의자 혈액형이 AB형이라는 사실은 알아냈지만 수사의 진척이 없어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17년이 지난 2015년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범행 당시 범인이 20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1965~1975년 사이 출생한 동종 범죄 전과자 8,000여명 가운데 피의자와 같은 혈액형 125명을 걸러냈다. 이어 과거 거주 지역 등을 고려해 오모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오씨가 다른 강도 범죄를 저질렀던 터라 경찰은 그의 DNA를 확보한 상태였다. DNA 데이터베이스 대조 결과 17년 전 노원구 살인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정액과 오씨의 DNA가 일치했다. 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혔던 ‘노원구 부녀자 강간살인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2010년 ‘DNA법’ 시행 이래로

올까지 미제사건 3,280건 해결

정액·모발·땀·침·혈흔 등으로

17년 지난 살인사건 범인도 밝혀

DNA확보로 범죄억제 효과도 커

과학수사 기법 더 진화 시킬 것

/사진제공=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실/사진제공=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실



경찰이 DNA 수사로 영원히 미제로 묻힐 뻔했던 노원구 부녀자 강간살인 사건을 해결한 것은 2010년 7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 시행되면서 범죄자 DNA DB를 구축한 덕분이다. 법이 제정될 당시 연쇄 살인마 ‘강호순 사건’과 8세 여아를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으로 흉악범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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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구속된 피의자나 범죄 현장에서 확보된 DNA를, 검찰은 유죄 판결이 확정된 수형인의 DNA를 각각 관리한다. DNA 채취 대상 범죄는 방화·실화, 살인, 약취·유인, 강간·추행, 성폭력, 마약,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 총 11가지다. 또 DNA 등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면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돼 미제 사건 범인을 단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지난 7년간 경찰과 검찰은 총 27만9,000건의 범죄자 DNA를 확보했으며 DNA 수사로 2010년 7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약 7년 동안 3,280건의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 DNA법 시행 이후 연간 500건의 미제 사건이 해결된 셈이다. 특히 현재 범죄 현장에서 채취했지만 아직 누구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DNA도 10만여건에 이른다. 해당 범죄로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다른 범죄를 저질러 DNA가 채취되면 검거될 수 있고 공소시효도 연장되는 만큼 단죄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제공=국립과학수사연구원/사진제공=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DNA는 오래된 사건일수록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증거물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시에 DNA DB가 개인정보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불식될 수 있도록 신뢰를 확보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DNA 수사는 철저한 증거 수집과 끈기 있는 과학적 분석이 성패를 좌우한다. 먼저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정액·모발·땀·침·혈흔 등을 확보해야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이들 증거물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져 DNA를 추출한 뒤 신원감정을 거친다. 경찰은 국과수 감정 결과를 토대로 기존 DB와 대조작업을 해 용의자를 추려낸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경험에 비춰볼 때 DNA 대조작업에서 일치로 판정된 용의자는 실제 범인일 확률이 매우 높다”며 “비록 입건된 용의자가 DNA 채취 대상이 아니더라도 피의자 동의나 영장을 발부 받아 DNA를 채취해 수사를 진행한다”고 전했다.

최근 과학수사기술이 발전하면서 영화나 드라마처럼 현장에 남긴 아주 작은 흔적만으로도 범인을 잡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말라버린 땀 한 방울을 확보해도 수사망을 좁힐 수 있다. 실제로 7월 부산 빈집털이범이 현장에 떨어뜨린 땀 때문에 검거되기도 했다. 범인은 당시 부산 사하구 감천동 한 주택가의 빈집에 몰래 침입해 현금과 귀금속 등 98만원어치 금품을 훔쳤다. 현장에 급파된 과학수사팀은 마룻바닥에서 반쯤 말라버린 작은 물방울을 발견했다. 면봉에 적셔 국과수에 DNA 감정을 의뢰한 결과 일주일 만에 땀의 주인이 밝혀졌다. 절도·폭력 등 전과 9범인 조모(32)씨였다. 그는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코팅 장갑을 사용했고 인근 폐쇄회로(CC)TV 위치까지 파악해 몸을 숨겼지만 폭염에 흘린 땀 한 방울에 발목을 잡혔다. 추가 수사로 인근에서 연이어 발생했던 5건의 절도 사건 모두 조씨가 저지른 범행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DNA를 DB화하고 수사에 활용하는 근본적인 목표는 ‘완전범죄는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 범행을 사전에 억제하는 것”이라며 “새로 발생하는 사건은 물론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미제 사건도 해결해 고통 받고 억울한 범죄 피해자가 없도록 과학수사기법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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