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과 미국·중국과의 통상 갈등으로 한국의 대외 리스크가 커졌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요20개국(G20) 및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차 국제 신평사를 만나 주요 리스크에 대한 한국의 대응 방안을 설명하며 신용등급 유지에 주력하고 있다.
피치는 지난 12일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다. 피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긴장 고조가 주요 불안요인으로 직접충돌이 없어도 기업과 소비심리 악화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서도 “한반도 내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는 예전과 유사한 패턴(pattern of rise-and-fall cycle)을 보이며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 리스크로 인해 한국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지만 전쟁 발발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로 평가한 것이다. 피치는 “한반도 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미사일 테스트 및 공격적 언행과 실제 전쟁 가능성은 별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등 대외건전성 수지 역시 AA- 등급을 견인한 요소로 꼽혔다. 피치는 “반도체 수출 등으로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17년 2.7%, ’18년 2.8%, ‘19년 2.6%)가 예상된다”며 “순대외채권국, 외환보유액, 경상수지 흑자 등 양호한 대외건전성은 신용등급 평가시 큰 강점(Clear rating strength)이라고 설명했다. 단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는 가계의 소비성향을 축소시키고 한국경제의 충격 취약도를 증가시킨다고 지적했다.
피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피치는 “한국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내수 진작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투명성 증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개혁들은 거버넌스를 개선 시킬 수 있고 한국 신용등급에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피치는 2012년 9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네 번째 등급인 ‘AA-’로 상향 조정한 뒤 5년째 이를 유지하고 있다. 피치가 부여한 한국의 신용등급은 다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 S&P 등급보다 한 단계 낮다. 무디스는 2015년 12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올렸고 S&P도 작년 8월 AA로 상향 조정했다.
일각에서는 피치가 한국에 부여한 등급이 무디스, S&P보다 낮기 때문에 피치도 조만간 한국 신용등급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북핵 이슈가 연달아 터지자 피치가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최근 피치의 신용등급이 유지되는 등 안정적인 상황이지만 대외리스크가 여전한 만큼 적극적으로 신용등급 방어에 나설 방침이다. 한국의 경우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고 국내 시장에 외국인 투자금도 상당수 들어와 있는 만큼 신용등급 강등으로 외국인 투자심리가 불안해지면 자칫 외국인 자금 이탈이나 거래 축소 등 실질적인 위협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김 경제부총리의 신평사 만남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김 경제부총리는 방미 중 세계 3대신용평가사인 무디스·스탠더드앤푸어스(S&P)·피치와 잇따라 만나 북핵리스크에 대비하는 우리 정부의 대응방안을 설명한다. 김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19~21일 문재인 대통령 방미 때도 뉴욕의 무디스·S&P 본사를 찾아가 “북한 위협에 대비해 국제공조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국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행보를 했다. 당시 경제부총리가 국제 신용평가사 본사를 방문한 것은 2004년 이헌재 부총리 시절 이후 13년 만이었는데 3주 만에 경제부총리가 3대 신용평가사 고위층을 다시 접촉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경제팀이 현재의 상황을 국가 신용도가 강등될 수 있는 위기 국면으로 보고 선제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