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블레이드 러너 2049’가 화제다. 영화는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 2019’의 배경이었던 2019년으로부터 30년이 흐른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복제인간)와 그들을 쫓는 블레이드 러너 간 대결이라는 기본 줄거리는 같다. 창조자와 피조물, 즉 인간과 복제인간의 경계와 본질을 묻는 철학적 주제도 유사하다.
영화든 소설이든 공상과학(SF) 작품에 등장하는 로봇은 거의 모두가 인간과 투쟁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면서 로봇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지만 오히려 최근 생산현장에서는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인간과 협력하는 로봇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례로 아마존의 전 세계 물류창고에서는 물건을 나르고 쌓는 일을 로봇이 하고 있다. 그 숫자가 10만대를 넘어섰지만 아마존은 단 한 명의 창고인력도 줄이지 않았다. 이들을 재교육해 로봇 관리자로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반복 업무는 로봇에 맡기고 직원들에게는 새로운 수납이 필요하거나 돌발상황이 발생했을 때 로봇을 조작하는 역할을 부여했다. 아마존이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상품을 배치해 비용을 줄이고 당일배송까지 가능해져 서비스 질을 높이게 된 것도 인간과 로봇 간의 협력 덕분이었다.
인간과 협력하는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 일명 코봇(co-bot)은 메르세데스벤츠·BMW·GM·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생산현장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원들이 BMW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 인간과 로봇이 협력할 경우 따로 작업할 때보다 생산성이 85%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7 로보월드’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코봇이 전시돼 큰 호응을 받았다. 로보스타·뉴로메카·가이텍코리아·민트로봇 등 로봇 전문업체들이 독자기술로 개발된 코봇을 내놓았고 한화테크윈은 올해 초 발표한 HCR-5 외에 가반중량이 각각 3㎏, 12㎏인 HCR-3과 HCR-12 시리즈를 선보였다. 특히 충돌감지 기술을 내장해 사람과 닿을 경우 즉시 작동을 멈추는 두산로보틱스의 코봇 네 종류가 높은 관심을 끌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도 하나의 제어기로 주변설비와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개방형 소프트로봇 제어기 ‘ARIA’, 다양하고 섬세한 작업을 수행하는 양팔에 다섯 손가락 기술을 접목한 로봇을 전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코봇은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작고 가벼워 이동성이 높고 간단한 재프로그래밍으로 새로운 작업에 투입할 수 있어 쓰임새가 다양하다. 각종 카메라와 센서로 주변을 인식하기 때문에 안전성도 높다. 무엇보다 정보통신기술(ICT)과의 결합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소·중견기업 제조 혁신을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2022년 세계 협동로봇 시장은 약 6조5,000억원 규모로 60%가 넘는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로봇산업 발전방안’을 수립하고 5대 유망품목에 협동·양팔로봇을 선정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일본·유럽 등의 로봇강국은 물론 ‘로봇굴기’ 선포 이후 해마다 20~3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비하면 투자 규모가 현저히 작다.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 교수는 공저 ‘제2의 기계시대’를 통해 인류가 제2의 기계시대로 진입하는 변곡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으로 근력이 대폭 강화된 제1의 기계시대에 이어 디지털 기술로 정신력을 강화하는 제2의 기계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제2의 기계시대에는 ‘무수한 기계지능과 상호 연결된 수십억개의 뇌가 협력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고 개선해간다는 특징을 가진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과 협력하고 돕는 로봇 개발로 제2의 기계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