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 움직임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첨단의료 및 생명공학 기술을 다루는 바이오산업 분야에서도 규제 완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16일 과학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학계·산업계·투자업계 관계자들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첨단의료·바이오산업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규제 현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과기정통부 생명기술과를 주축으로 결성된 TF는 연말까지 총 세 차례 모여 국내 바이오산업 현황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우선 순위를 결정한 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규제 완화 작업에 돌입한다. 이석래 생명기술과 과장은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은 줄곧 나왔지만 연구자·기업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없었다”며 “불합리한 규제들을 전반적으로 다시 살핀 후 관계 부처와의 조율을 통해 하나씩 풀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TF에 따르면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규제들만 총 40여 가지에 이른다. 대표적인 경우가 생명윤리법이다.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에서는 유전자 가위나 유전자재조합 기술, 줄기세포 등 첨단 의료기술을 활용한 기초 및 임상 연구 활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는 기초연구조차 특정 질병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최근 3세대 유전자 가위(CRISPR) 관련 특허를 보유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해외 연구팀과 공동으로 선천성 유전병을 치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내에서는 시도조차 어려운 연구가 해외에서는 활발한 현실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개인정보보호법도 완화 필요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전국민 건강보험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 양질의 보건의료데이터가 구축된 국가로 손꼽힌다. 데이터를 유용하게 활용할 경우 국민 건강관리의 질은 물론 글로벌 산업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로막혀 활용이 쉽지 않은 상태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최근 CT나 MRI 등의 영상기록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암 등의 난치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기술개발 경쟁이 뜨거운데 CT나 MRI 빅데이터는 ‘익명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어려움이 많다”며 “긴 시간 축적해온 양질의 데이터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정부의 규제 완화가 혁신 산업 분야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자 업계 한 관계자는 “인간 유전체 분석을 통한 정밀의료나 예측의학이 앞으로 중요해지리라 생각해 기술·상품 개발에 주력해왔는데 소비자가 직접 의뢰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항목을 12가지로만 제한함으로써 시장 확대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정부 정책이 예측하기 어렵다 보니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반갑지만 얼마나 빛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해당 법률들의 주무부처가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환경부 등으로 각각 쪼개져 있어 협의나 조율이 쉽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바이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규제 완화는 종교계,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규제 완화는 대다수 시민단체 등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는 민감한 이슈”라며 “때문에 규제 완화가 범부처 차원의 ‘4차 산업혁명 위원회’에서도 관심 있게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