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신상일(가명)씨는 최근 바티칸 성시스티나 성당에서 홍역을 치렀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촬영이 금지된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천지창조’를 사진 찍다가 발각돼 현장 관리인에게 사진을 지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신씨는 “다른 나라 여행가이드들에게 현지 규정을 가장 많이 어기는 관광객은 한국인이라는 놀림을 종종 받는다”며 “유럽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오히려 나빠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단체여행 대신 자유여행이 늘어나면서 이들 ‘배낭족’들이 호스텔과 캠핑장 등에서 밤늦게까지 큰 소리로 떠들며 술을 마시거나 공용 공간인 부엌과 식탁을 사실상 무단 점거하는 ‘글로벌 민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몽골로 자유여행을 떠난 임모(30)씨는 “몽골 전통 텐트에서 잠을 자는데 옆 텐트의 한국인들이 밤마다 노래 부르고 술을 마셔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참다못한 독일인이 대신 항의해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배낭여행족이 즐겨 찾는 유스호스텔에서도 외국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가 종종 연출된다. 유럽 지역 여행가이드인 박모씨는 “젊은 친구들이 공용 공간인 부엌에서 늦은 밤까지 술 마시며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며 “숙박시설에서 인종 차별이나 무시를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한국인도 종종 있는데 본인이 먼저 잘못해 자초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관광 명소에서 금지된 사진촬영, 고성방가 등을 서슴지 않는 행태도 여전하다.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 명소에서는 단 한 사람의 일탈행위가 한국과 한국인 전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최근 영국으로 배낭여행을 갔던 대학생 김모씨는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비슷한 또래의 한국 여학생이 이른바 ‘점프샷’을 찍기 위해 이집트 왕의 주먹을 묘사한 거대 석상에 올라가려다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했던 것이다. 김씨는 “보안 요원이 황급히 뛰어가자 현장에 있던 수백 명의 관광객이 그 여학생을 일제히 바라봤다”며 “수천년 된 고대 유물에 어떻게 올라갈 생각을 할 수 있느냐며 황당해하던 외국인들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필리핀이나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는 한국인의 ‘밤문화 투어’도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에서 성매매 관광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최근 필리핀 등에서 총기 사고가 잇달아 치안에 대한 경각심이 요구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한국 관광객들이 부지기수다. 동남아 지역에서 현지 주재관으로 근무했던 경찰 관계자는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잇따른 인명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른바 ‘황제 관광’을 즐기러 온 한국 관광객은 오히려 늘어 한국의 이미지가 갈수록 훼손되고 있다”며 “특히 현지에 출장 온 기업인들이 현지인과 가이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유흥가를 찾았다가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 여행객의 비매너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글리 코리안 논란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해외 관광객 수 자체가 워낙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 전 미국의 리빙소셜과 만달린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최악의 관광객 6위에 선정됐지만 최근 주요 기관에서 실시하는 각종 조사에서는 순위권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글로벌 숙박 예약 업체인 호텔스닷컴이 공개한 ‘최악의 해외관광객 국가’ 순위에 한국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모범 관광객으로 여겨지는 일본도 한때는 ‘어글리 재패니즈’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한국 역시 해외여행이 보편화되며 일종의 진통을 겪는 단계”라면서 “한국인 관광객은 현지에서 한국 이미지를 대표하는 만큼 국민 스스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관광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한국과 현지의 문화가 다른 탓에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사전 교육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