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日 중의원 선거] '배제의 정치' 패착…'찻잔 속 태풍' 그친 고이케

"매우 힘든 결과" 패배 인정

민진당 합류 타진 거부하며

입헌민주당 창당 계기 내줘

자민당과 정책 차별화 실패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총선 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총선 패배를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파리=AFP연합뉴스




“민주당 정권에서 경제가 정체됐습니다. 간판을 바꿔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일본 중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도쿄 아키하바라의 마지막 유세에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희망의 당’ 대신 민주당·민진당으로 이어지는 진보계열 신당인 입헌민주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아베 총리가 주 공격대상으로 희망의 당 대신 입헌민주당을 택한 것은 ‘아베 1강 타도’를 기치로 내세운 희망의 당의 열풍이 선거전이 진행될수록 줄어드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거전 초반까지만 해도 민진당·일본유신회 등 야권을 결집시키며 아베 총리와 자민당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희망의 당은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찻잔 속 태풍’에 그치고 있다. 선거 초반 희망의 당은 총선에서 선전해 연립여당(자민·공명당)의 세력 확대를 막고 제1야당으로서 정권을 견제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최근 확연히 떨어지는 지지율 속에 입헌민주당에 제1야당 지위마저 내줄 가능성이 부각되며 고이케 지사가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불거지고 있다.


이날 일본에서 중심기압 930헥토파스칼(hPa)의 초대형 태풍인 ‘란’이 남부에 접근한 가운데 465명의 중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투표가 시작됐지만 고이케 지사는 자리조차 지키지 않았다. 선거 당일인 22일 고이케 지사는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주요 도시협의체인 ‘C40’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케 지사의 파리 출장이 희망의 당이 겪고 있는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포스트 아베’로서 몸값을 올렸던 올해 초와 비교하면 초라한 모습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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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판세도 ‘희망의 당 돌풍으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개헌선(310석)은 고사하고 과반(233석)도 못 가져갈 수 있다’는 초반의 예측과는 딴판이다. 앞서 자민당이 선거 목표로 내건 의석수는 기존 의석수보다 37석이나 적은 과반 의석 확보였지만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단독 과반을 기록해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의석과 합칠 경우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2 의석인 310석 이상을 획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고이케 지사의 돌풍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친 원인을 ‘배제의 정치’에서 찾았다. 제1야당이었던 민진당이 ‘아베 1강 종식’을 위해 이념적 성향이 다른 희망의 당에 합류 의사를 타진했지만 고이케 지사는 “우리 정책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다”며 “(희망의 당과 정책 태도가 일치하지 않으면) 배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파 색채의 희석과 ‘노조와 관계있는 정치인이 희망의 당에 들어온다면 선거 연대는 없다’는 일본유신회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이었지만 ‘배제의 정치’는 민진당 리버럴계를 중심으로 한 입헌민주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자민당과 이념·정책적 차이를 부각하지 못한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자위대 헌법 명기 등의 개헌에 대해 희망의 당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구나 희망의 당이 야당으로 선거전을 치르고 있음에도 고이케 지사는 8일 토론회에서 “(자민당과의) 대연정에 대해서는 선거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고이케 지사는 “대연정 가능성은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연정’은 선거 종반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희망의 당과 자민당 간 차이가 없음을 부각하는 주된 논거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당장 이번 총선이 끝나면 희망의 당이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세가와 유키히로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희망의 당에 합류한 민진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희망의 당과의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희망의 당은 선거 직후 붕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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