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사드發 경제·외교 징비록 만들어라] 위기 때 정상 작동 않는 외교채널..."중국 내 지한파 더 늘려라"

<3>중국 관시 다시 돌아봐야

시진핑 집권 2기 들어 은밀한 인맥 위력 더 강해져

中 진출 한국기업 사드 갈등에 관시 중요성 재확인

외교가 "친한파 확대 위해 소통·신뢰 구축 나서야"

왼쪽부터 한정, 자오러지, 왕후닝, 왕양, 리잔수 상무위원왼쪽부터 한정, 자오러지, 왕후닝, 왕양, 리잔수 상무위원


중국의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압박이 절정으로 치닫던 지난 9월, 충청남도 공무원들이 ‘한중일 3농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구이저우성 구이양시를 찾았다. 사드 갈등 때문에 중국 측으로부터 냉대를 받을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포럼 방문단은 큰 환대를 받았다. 당시 포럼에 참석한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는 쑨즈강 구이저우성 당서기의 개인 만찬에 특별 초대까지 받았다.

중국 정부의 ‘사드 때리기’가 한창이던 당시 한국 방문당이 이처럼 환대를 받은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지역의 대표산업인 농업 분야 포럼에 구이저우성이 그만큼 신경을 쓴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 포럼 직전 충칭시 당서기로 승진한 천민얼 전 구이저우성 당서기와 한국과의 끈끈한 인연을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구이저우성 당서기 시절 천 서기가 충청도를 방문할 때마다 특별한 정성을 기울였던 지방자치단체의 지속적인 교류 노력이 힘을 발휘했다는 해석이다.

지난 2012년 시진핑 집권 이전의 고도 성장기에 중국의 기업이나 정가에서는 특유의 인맥 문화인 ‘관시(關係·관계)’가 위기관리는 물론 성공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시진핑 집권 들어 부패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 같은 관시 전통이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은밀한 인맥 문화의 위력은 오히려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시진핑 주석의 옛 부하나 측근을 의미하는 ‘시자쥔’이다. 태자당·상하이방·공산주의청년당(공청단)으로 대표되는 중국 정파의 3각구도를 깨고 등장한 시자쥔은 시진핑 집권 2기 들어 중국 지도부 내 가장 강력한 계파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정치 신인 천민얼 서기가 차세대 지도자 후보로 부상한 이유로 시자쥔이라는 관시 코드에 주목하며 중국에서 인맥과 지연을 중심으로 하는 관시는 여전히 성공의 철옹성 보루로 통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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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호된 사드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 현지에 진출한 기업들과 한국 외교가에서는 관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고 있다. 그동안 쌓아 왔던 대중 외교채널이 사드 사태와 같은 위기 시에서는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10년 넘게 중국 당국자들과 관계를 맺어온 한 외교 소식통은 “1년이 넘는 사드 갈등 사태를 계기로 중국 내에 지한파를 더욱 늘리고 위기와 갈등 상황에서 우리의 입장을 반영하고 지지해줄 ‘친한파’ 관시 인맥을 더욱 탄탄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에는 사드 갈등이 황금과 같은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시 주석이 사드 배치에 대해 직접 ‘국가 핵심이익이 걸린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못을 박은 점이 반한 정서와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보복 조치를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되기는 했지만 중국의 고도 성장기에 탄탄하게 구축했다고 자신했던 중국 내 관시와 기업 경쟁력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과 현대·오리온 등 중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한국 대기업들은 이번 사드 갈등을 계기로 중국 전략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점검하는 한편 중국 대관 업무 분야와 중국 합작사와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다시 추스르는 분위기다. 현대차와 오리온은 최근 중국 관시에 정통한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김병유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은 “이번 사드 갈등 사태는 중국의 정치나 기업 문화에서 관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정치적 요인 등에 의해 제도나 관습의 적용이 더욱 정교해지는 중국 당국의 변화 흐름에 우리 기업들이 준비를 더욱 단단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 분야에서도 중국 내 지한파를 더욱 늘리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국내에서는 이른바 중국 전문가라고 스스로 자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중국 내 지한파 중국 인사를 키우는 데는 소홀했다”면서 “중국 내 관가와 학계·미디어 분야에서 위기시 한국을 지지할 수 있는 적극적인 지한파를 양성하기 위해 꾸준한 소통과 신뢰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베이징=홍병문특파원

홍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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