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00세 시대는 인류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초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사회경제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다. 100세까지 모두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인간의 오랜 희망인 무병장수의 꿈이 실현되는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병원만 계속 늘려나가야 한다면 개인적으로 비극일 뿐 아니라 국가 재정도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81.8세인데 건강수명은 65.2세에 불과하다. 평균적으로 15년 이상을 질환으로 고통받다가 인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그동안 생명공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 같지만 아직도 60% 남짓한 질환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다. 초고령화 시대를 축복으로 만들기 위해 신약과 질병 예방 기술 개발의 패러다임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하는 이유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의 주도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많은 기술이 새로 개발됐다. 특히 2010년 전후로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이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모든 병원체와 수만 명의 암환자 및 유전병 환자의 게놈 정보들이 빅데이터로 축적됐다. 최근에는 NGS 기술과 정량중합효소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PCR) 기술, 디지털 PCR 분석 기술을 이용해 한 개의 세포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의 전달RNA(mRNA) 수뿐 아니라 단백질 수까지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돼 질병 세포들 하나하나의 mRNA와 단백질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어떻게 신약 개발을 가속화할 수 있을까. 23쌍의 인간 세포 염색체는 A·C·G·T 등 4종의 DNA 염기 32억개가 연결된 염기서열에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DNA 염기서열의 2%에 mRNA로 전사돼 단백질로 합성되는 약 2만종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mRNA는 염색체의 DNA를 주형으로 만들어지는데 2만개의 유전자 중 세포별로 필요한 1만여개의 유전자만 선택적으로 전사해 mRNA가 합성되고 이를 주형으로 각종 단백질이 합성된다. 세포에서 전사되는 mRNA의 수는 다양한데 평균 수십 개의 mRNA 복제본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은 각각의 mRNA 대비 평균 1,000배수가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치료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표적단백질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소분자화합물과 항체였다.
유전자 빅데이터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표적단백질을 만드는 mRNA를 분해해 단백질을 제거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DNA 합성 기술이 개발되던 1978년 발표됐다. 이후 1998년 mRNA 조절 기전이 세포 안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보고된다. 20~30개의 염기로 된 마이크로RNA가 mRNA를 조절하는 현상을 밝혀냈고 인간 게놈에서도 약 2,600종이 발견됐다. 여기에 RNA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세포의 모든 mRNA를 선택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저해RNA(siRNA·small interfering RNA)가 개발됨으로써 신약 개발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필자가 몸담은 회사에서도 2001년 siRNA 연구를 시작해 2009년 세계 최초로 단일분자로 혈액에서 안정적인 나노 입자를 형성하는 siRNA(SAMiRNA)를 발명했고 전 세계 주요 국가에 물질특허를 등록했다. 이를 기반으로 현재 치료제가 없는 특발성 폐섬유화증 치료제와 항암제 내성 폐암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모든 mRNA에 특이적인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어 현재 치료제가 없는 모든 난치병 신약을 개발할 수 있고 세포에서 활성을 오래 유지해 약효가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특징을 지녔다. 무엇보다 유전자정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빠르게 신약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필자는 SAMiRNA 기술로 남성형 탈모 해결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탈모를 해결하고 유전자 조절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엔도르핀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