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한미FTA 개정협상, 거세지는 통상압박] 美ITC "韓 페트 수지로 피해"…태양광·세탁기 이어 전방위 압박

美, 롯데케미칼·티케이케미칼 등 대상 반덤핑 관세 예상

금주부터 태양광모듈·세탁기 제재수준 결정 등도 잇달아

재계 "개별 기업 차원 대응 안먹혀...정부가 나서 해결을"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사무소에서 열린 한국산 세탁기 세이프가드 공청회 모습. ITC는 오는 21일 표결을 통해 한국산 세탁기로 인해 미국 가전 업체가 입은 피해에 대한 구제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한다.  /연합뉴스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사무소에서 열린 한국산 세탁기 세이프가드 공청회 모습. ITC는 오는 21일 표결을 통해 한국산 세탁기로 인해 미국 가전 업체가 입은 피해에 대한 구제조치 방법과 수준을 결정한다. /연합뉴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산 페트 수지에 대해 자국 산업 피해 판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태양광 패널, 세탁기에 이어 세 번째다. 당장 이달 말까지 미국과의 통상 관련 일정이 줄줄이 예고된 상황에서 페트 수지도 반덤핑 관세 부과가 예상돼 국내 산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미국 통상 당국이 다음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앞두고 통상압력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미 ITC는 지난 8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인도네시아·파키스탄·대만 등 5개 국가의 페트(PET·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 수지 수입으로 인한 자국 기업의 피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앞서 9월 DAK아메리카스·인도라마벤처스·M&G폴리커스 등 미국 기업 4곳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페트 수지 수입물량이 5개 국가에서만 305% 증가했다며 미 상무부와 ITC에 반덤핑 관세 부과 청원서를 제출했다. ITC는 곧바로 조사에 착수했으며 이번에 예비판정이 나왔다. 가볍고 깨지지 않아 음료수병·식품용기 제조에 사용되는 페트는 국내에서 롯데케미칼·티케이케미칼 등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ITC가 자국 산업 피해를 인정함에 따라 한국산 페트 수지의 운명은 이제 미 상무부 손으로 넘어갔다. 상무부는 ITC가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덤핑 여부와 관세율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상무부의 예비결정은 내년 3월, 최종 결정은 내년 5월께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ITC가 자국 산업 피해 사실을 인정한 만큼 반덤핑 관세 부과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미 페트 수지 수출은 2016년 2,400만달러에서 올 상반기 6,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들어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어 이번 건뿐 아니라 다른 화학제품에 대해서도 딴죽을 걸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정으로 미국이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판정한 한국 제품은 모두 세 가지로 불어났다. ITC는 9월 한국·중국·멕시코 등에서 수입된 태양광 패널, 지난달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탁기에 대해 관련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예정된 통상 분쟁 과정에서도 ITC의 공세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ITC는 당장 13일 미국 태양광 업체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방안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수입산 태양광 모듈에 대해 △4년간 관세 32∼35% 부과 △4년간 관세 15∼30% 부과 △전 세계 수입물량 쿼터 설정 등을 권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미국 무역대표부(USTR) 공청회를 거쳐 내년 1월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방안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또 14일에는 미 업체 넷리스트가 SK하이닉스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소송에 대한 ITC 결론이 내려지고 21일에는 한국산 세탁기와 관련한 ITC 구제조치안에 대한 표결도 실시된다. 지난달 미국 월풀의 손을 들어준 ITC는 이날 투표로 제재 방법과 수위를 결정하고 다음달 4일 백악관에 보고서를 올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60일 이내에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를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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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계는 최근 미국의 통상압력이 한미 FTA 개정 협상과 맞물려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덤핑 관세나 세이프가드 등을 지렛대 삼아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미 정부는 한미 FTA 재협상을 두고 양국이 힘겨루기하던 올해 상반기 철강과 화학제품 등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반덤핑 조사를 실시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ITC가 국산 제품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전후로 우리 입장을 꾸준히 전달해왔으나 도무지 먹히질 않고 있다”며 “통상압력이 개별 제품과 업종 차원에서 진행되는 게 아닌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업계를 비롯해 미국 내 우호세력 등과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전자 업계 임원은 “기업 차원에서 하는 대응이 쉽사리 먹히지 않을뿐더러 미국 정부에 자칫 밉보이기라도 하면 문제만 더 키울 수 있다”며 “지금 같은 때에는 정부가 적극 나서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지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조하는 등 미국 내에서도 우리 입장에 공감하는 우호세력을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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