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日 언론인 고미요지, 北 김정은을 말하다] <8> 타국서 독살당한 장남 김정남...아들 김한솔 안전할까

김정남 2001년 위조 여권으로 일본행...김정일 눈밖에 난 뒤 해외유랑

김정남 출생 4년만에 김일성에게 손자 얘기 꺼낸 김정일

9살 김정남 스위스 유학은 계모 고용희의 압박도 한몫

올 2월 말레이서 독극물 피살 김정남...결국 죽어서야 평양으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김정은의 눈엣가시?...그의 앞날에 관심 쏠려

지난 2001년 5월4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포착된 김정남 모습. 김정남은 그때 도미니카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됐으며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지난 2001년 5월4일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포착된 김정남 모습. 김정남은 그때 도미니카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됐으며 이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밖에 나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고미요지컷


◇ 비극의 방랑아 김정남

김정남은 1971년 5월 10일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 태어났다. 2001년 일본행 위조 여권으로 입국할 때 신병구속으로 언론에 노출돼 아버지 김정일의 분노를 샀다. 이것이 결정타가 돼 일찌감치 후계자 후보에서 밀려나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정남의 성장 과정은 탈북 후 한국에 들어온 이한영의 수기에서 상세히 밝혀졌다. 4살 연상의 성혜림과 김정일의 동거와 결혼은 물론 아이의 출생도 북한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축복받지 못한채 태어난 어린 장남에 대한 가련함과 애틋함일까. 김정일은 정남이 한 밤중에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 자기가 우유병을 준비해 받아줄 정도였다.

김정일이 충치 치료 보상으로 정남에게 미국차 캐딜락을 주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외부세계를 접할 수 있도록 하라는 주위의 권유를 듣고 아홉 살 정남을 스위스로 유학을 보낸 김정일은 그때 술을 마시며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처럼 격하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깊은 애정을 받았던 정남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 김정남을 인정한 김일성

이한영의 책 ‘15호 관저의 허점’에서 살펴보자. 1975년 4월 김일성 생일이 가까웠던 어느 날 김정일이 부친에게 장남의 존재를 어렵사리 꺼냈다. 김일성은 심하게 화를 내며 질책했다. 그러나 자기도 간호사에게서 얻은 아들 이야기를 정일에게 막 털어놓았던 참이었다.

이 때문이었는지 곧 분노를 가라앉히고 “출산했다니 어쩔 수 없다. 만나보자”고 했다. 손자를 직접 대면하니 둥글둥글하고 통통한 생김새에 입 주변부터 코까지 김정일을 빼닮았다. 김일성은 그후 틈만 나면 정남을 곁에 두고 귀여워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그 뒤 성혜림을 버리고 고용희에게 갔고 정남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자연히 식어 버렸다.

정남이 외국생활을 시작한 배경에는 고용희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교사회인 북한에서 장남이 국내에 있다면 언젠가 후계를 둘러싸고 분쟁이 생길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

김정남은 스위스국제학교와 제네바 종합대학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 각지를 여행했지만 제멋대로 생활하기도 했다. 신병이 구속된 2001년 전에도 수차례 일본 방문 사실이 당시 그를 태워준 택시 기사 등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동생 정은에게 틀림없이 위협이 되었다고 국가정보원이 공개했다. 정남이 2012년 4월 정은에게 쓴 편지에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이 도망칠 길은 자살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노리지 말아달라고 탄원했다.

김정남을 장래 반체제 지도자로 앉히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런던을 거점으로 한 영국 탈북자 단체 ‘국제탈북민연대’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싱가포르에서 작년 6월까지 세 차례나 정남과 접촉했는데 그는 “북한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원한다. 내가 망명정부 수반이 돼도 3대 세습”이라며 거부했다.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열망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이해하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본다”며 탈북민 주도의 망명정부 구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정남은 올해 2월 13일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고 수속하던 중 여자 두 명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얼굴에 뿌져진 독극물 때문이었다. 많은 북한공작원이 관련돼 있는데 사건 직후 북으로 돌아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사건의 진상은 알 수 없게 됐다. 김정남의 시신은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치열한 사인 공방 끝에 3월30일 피살 한달반 만에 결국 평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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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테러로 목숨을 잃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달말 북한 공작원들이 그를 암살하려 중국 베이징에 들어갔다가 공안당국에 체포되면서 그의 신변안전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캡처 YTN]올 2월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독극물 테러로 목숨을 잃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달말 북한 공작원들이 그를 암살하려 중국 베이징에 들어갔다가 공안당국에 체포되면서 그의 신변안전이 다시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캡처 YTN]


◇ 김한솔의 현재와 미래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은 마카오에서 자랐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국제학교 유나이티드 월드 칼리지(WUC) 모스탈 분교를 거쳐 파리 정치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2012년 보스니아의 국제학교 재학 중에 핀란드의 TV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한솔은 영어 인터뷰에서 “1995년 평양에서 태어나 수년간 살다가 마카오에 살면서도 몇 번이나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에는)어머니 집에서 지내고 할아버지(김정일)가 북한 최고지도자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고 밝혔다. 숙부 김정은에 대해서는 “아버지(김정남)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작은아버지가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마카오 국제학교에 다닐 때 한국인 친구와 언어와 문화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통일이 되어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것을 희망한다”고도 했다.

한솔은 김정남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이 숙청된 2013년 이후 안전상의 이유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모두 폐쇄했다.

◇ 천리마 민간방위란?

한솔은 아버지 정남이 살해된 이후 천리마민간방위라는 조직의 협력을 받아 안가에서 보호받고 있다. 촬영시기와 장소를 밟히지 않은채 유투브에 직접 등장해 40초간 이야기했다. 검은 옷을 입은 한솔은 “나의 이름은 김한솔로 북한에서 왔다. 김씨 가족의 일원”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계속해서 북한에서 발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권 표지와 사진이 게재된 페이지도 보여주었다. 한솔은 이밖에도 “아버지는 수 일 전에 살해돼 지금은 어머니·여동생(이혜경·김솔희)과 함께 있다. (음성이 소거)...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투브에 동영상을 투고한 ‘천리마민간방위’는 “우리는 김정남의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속히 가족 3명과 면회해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이것이 이번 건에 관한 최초이자 최후의 성명이다. 지금 가족의 소재지는 밝힐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네덜란드·중국·미국·그 외 1개 국가에 대해 “인도적 지원에 감사한다”고 표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솔은 중국에 있다, 미국에 있다 등 여러 억측이 나온다.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 2명이 지난 10월말 중국 베이징에서 김한솔의 행방을 추적하다 공안당국에 체포됐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한솔은 “다음 타깃은 나”라며 극도의 불안감과 고립감에 힘들어했다고 대북 소식통이 전했다. 아무튼 ‘백두혈통’ 김한솔의 앞날은 풍전등화일까, 아니면 몇몇 관련국의 철통보호 속에 무탈할 수 있을까.

/고계연기자 kogy2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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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근 한반도 정세(외교 안보 등)를 좌지우지하는 핵심인물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당위원장이라 하겠다. 잇단 탄도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 그리고 섬뜩한 말 폭탄 주고받기로 긴장과 전쟁 위기감을 키우는 두 사람. 다소 진정국면이지만 여전히 ‘선전포고 주장’까지 나오는 일촉즉발 험악한 형국이다. 트럼프에 맞서는, 30대 초반의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미치광이인가? 전략가인가? 그의 성장 과정과 인성 등을 들여다보고 북한의 과거 현재 미래 전반을 분석·예측해보는 일본 언론인 고미요지(도쿄신문 편집위원)의 원고를 입수했다. 국내 판권을 가진 서교출판사 김정동 사장이 번역서 출간에 앞서 콘텐츠 사용에 대해 양해를 해줬다. 일부 수정을 거쳐 정기적으로 옮겨 싣는다.

* 고미 요지(五味 洋治) :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쥬니치신문 서울지국에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중국총국에서 근무하며 북한 뉴스를 쫓아왔다. 올 2월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과 7년 동안 주고받은 전자우편 대화록이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으로 지난 2013년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도쿄신문 편집위원으로 재직 중. 60세.

고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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