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자를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들, 특히 폐 기능이 상실된 말기 폐부전 어린이들에게 부모의 폐 일부를 이식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체 폐이식 수술을 집도해 성공시킨 박승일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15일 “우리 병원에서만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폐이식 대기자 68명 중 절반에 가까운 32명이 뇌사자의 폐를 기다리다 사망했다”며 “장기이식법 등을 고쳐 하루빨리 생체 폐이식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생체 폐이식은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다. 생체 폐이식이 활발한 일본에서는 1년, 3년, 5년 생존율이 93%, 85%, 75%로 의학적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국내 장기이식법상 폐는 간·신장 등과 달리 법적으로 생체 이식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어서 뇌사 기증자가 필요하다. 폐를 우선적으로 기증받을 수 있는 요건도 무척 까다롭다. 그래서 말기 폐부전 환자인 오화진(20)씨가 국내 첫 생체 폐이식을 받기까지의 과정도 무척 험난했다. 화진씨는 2014년 갑자기 숨이 쉽게 차고 체중이 증가하면서 몸이 붓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폐동맥이 두꺼워지고 혈압이 높아져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보내는 것이 어려워졌다. 결국 심장에 과부하가 걸리고 심장과 폐 기능이 모두 떨어져 특발성 폐고혈압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언제든 급성 심장마비가 올 수 있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화진씨도 지난해 7월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고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아버지 오승택(55)씨는 8월 국민 신문고에 “나와 아내의 폐 일부를 딸에게 주는 생체 폐이식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도 병원 임상연구심의위원회와 의료윤리위원회를 여는 한편 대한흉부외과학회·대한이식학회에 의료윤리적 검토를 의뢰했다. 정부기관과 국회,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대한이식학회에도 보고해 생체 폐이식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결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 지난달 21일 아버지의 오른쪽 폐와 어머니 김해영(49)씨의 왼쪽 폐 아래 부분(폐엽)을 떼어 이식했다. 폐는 오른쪽에 3개, 왼쪽에 2개의 폐엽이 있다. 아버지 승택씨는 “기약 없는 이식 대기기간 중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몰라 매일 지옥 같았는데 수술 후 천천히 숨 쉬는 연습을 하면서 다시 건강을 찾고 있는 딸을 보니 꿈만 같다”며 “깜깜했던 우리 가족의 앞날이 다시 밝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