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기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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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초강력 허리케인 어마(Irma)가 미국 플로리다주에 접근하고 있던 9월 초. 북동부 항구도시 잭슨빌의 피자헛 지점 매니저는 ‘모든 직원에게 알림’이라는 제목의 근무지침을 매장 게시판에 붙였다. “우리는 고객들이 필요로 할 때 그 요구에 맞춰야 할 책임이 있다”로 시작된 지침에는 구체적이고 상세한 조건이 담겨 있었다. 허리케인 상륙 24시간 전에 근무 지역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이 규정을 어기면 이유를 불문하고 결근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허리케인을 핑계로 매장에 나오지 않은 직원들은 제재하겠다는 경고다. 대피했을 때도 72시간 내로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했다. 당시 잭슨빌은 거리에 1m 이상의 물이 들어찰 정도로 홍수가 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긴급 상황에서 ‘갑질’ 지침을 내놓았으니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한다’는 등 비난이 쏟아진 것은 당연했지 싶다. 논란이 커지자 피자헛 본사가 공식 성명까지 내기도 했다. 다행히 사태가 수습돼 잭슨빌 피자헛 직원들은 징계를 면했지만 상당수 업체에서는 실제로 근무지 이탈을 이유로 해고가 이뤄진 모양이다. 8월 미 남서부를 강타한 하비(Harvey)와 뒤이은 어마로 플로리다·텍사스에서만 수백 명이 결근 탓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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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외에도 연이은 허리케인의 여파로 실업자가 속출하면서 9월 미국의 일자리가 3만3,000개나 줄었다. 이는 2010년 이후 최악의 고용지표였다니 어마·하비의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허리케인, 대형 산불 등으로 업무에 차질이 잦아지자 ‘기후 휴가(climate leave)’제를 도입하는 미국 기업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뉴욕·플로리다·캘리포니아 등 재난이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의 기업들이 많이 동참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뉴욕의 정보기술(IT) 업체 포그 크리크와 스택 오버플로, 캘리포니아의 컨설팅 기업 실린더가 최근 최대 5일의 유급 기후 휴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자연재해에 따른 불가피한 결근 때문에 해고·징계를 당하는 직원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이변 등으로 자연재난이 더 빈발하고 있어 기후 휴가에 주목하는 곳이 미국 기업만은 아닐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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