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기와 나’ (감독 손태겸)속 주인공 ‘도일’(이이경)은 사회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결혼을 앞두고 여자친구와 그 사이에서 낳은 아기까지 책임져야 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기만 두고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 헤매며 마주하게 되는 비밀과 위태로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인 ‘도일’의 혼란스런 감정과 ‘이해하기 힘든 선택’은 이이경의 힘으로 스토리의 힘을 온전히 갖게 됐다.
손태겸 감독은 “이이경 배우의 전체적인 아우라가 좋았다.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을 지닌 배우라 더더욱 영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손태겸 감독은 이이경의 데뷔작 ‘백야’(2012)를 보고 매료됐다고 한다. 기획 단계부터 체대출신이라는 이이경의 이력과 후회 없이 돌진하는 실제 성격, 거칠지만 부드러운 면모 등을 ‘아기와 나’의 ‘도일’ 캐릭터 속에 담아냈다.
“이이경 배우가 출연한 2015년 시트콤 ‘유미의 방’도 봤는데, 밝고 재미있는 걸 보여주는 분이었다. 반면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그 외 다양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연기력과 마스크를 지닌 배우다. ‘아기와 나’ 주인공으로 염두해 두고 있던 차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며 더욱 확신을 갖게 됐다. 도일이란 캐릭터가 어떤 느낌이고 왜 이런 행동들을 하는지 빨리 캐치하시고, 제가 생각했던 비전이랑 비슷하게 말해주셨다.
그리고 나서 이야기 해보니 과거 방황하던 시절 이야기, 혼자 독립적으로 지내면서 고군분투한 이야기등이 도일의 어떤 부분이랑 맞닿아있는 부분이 있었다. 끝까지 단독으로 끌고 가야 하는 캐릭터인데 책임감을 가지고 열연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기와 나’는 실제 감독 주변인들이 들려준 실화를 모티프로 구성된 영화이다. 남자는 결혼을 앞두고 아기만 남겨둔 채 사라진 여자친구를 찾아 헤맨다. 남자는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기와 떠나간 여자를 잊고 새 출발 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않는다. 손태겸 감독은 그 실화를 듣고 이야기의 살을 붙여나갔다고 한다. 그는 ‘삶 속에서 이해하기 힘든 선택’과 ‘ 각자의 사정이 부딪히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면 아이를 어딘가에 맡기고 자신의 인생을 새로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나. 나는 그 주인공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그 남자의 삶 속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결국에는 여자가 사라지는 이야기인데 어찌하여 사라졌고, 그동안에 무엇을 했고, 도일이 결과적으로 왜 찾고 있는지를 쫓아가는 영화다. 굳이 말로 하지 않고 가려져 있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도일이 여자를 찾으면서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친구, 주변 사람들, 즉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나 풍경을 따라가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번쯤 해보고 싶었다.”
손태겸 감독은 영화 ‘조디악’ 과 ‘소셜 네트워크’(감독 데이빗핀처)를 레퍼런스 삼았다고 한다. 명확한 줄거리를 따라가는 게 아닌 그 주변 관계와 주변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그렇게 손 감독은 영화의 톤앤매너를 유지하면서 도일의 한 계절을 그려냈다.
90일간 도일의 방황은 계속된다. 여자친구를 찾을 수도 없고 이유를 알 수도 없다. 그렇게 답답함이 커져가는 속에서 점차 도일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기 같은 ‘나’로 대변되는 주인공 ‘도일’의 드라마틱한 여정은 관객을 제 편으로 끌어당긴다. 그렇게 영화는 ‘남의 인생에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다’고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기도 한다.
“사람의 삶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한데, 잣대를 들이면서 평가를 하거나 함부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작 속들을 들여다보면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고, 누가 함부로 돌을 던지거나 할 수 없다. 내밀한 속사정은 사람마나 다른 것 아닌가 .
‘아기’ 땐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조금만 노력하면 가질 수 있었다. 원하면 해주니까. 하지만 점점 어른이 될 갈수록 뭔가 하는 게 어려워진다. 그 속에서 포기하는 것도 배우고,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 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도일의 가족들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시선, 그리고 사회적 제도가 있다면 이들을 응원 해줄 수 있을까. 그들이 원하는 삶을 보장해줄 수 있을까?란 질문 느낌으로 끝내고 싶었다.“
영화는 불친절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설명되어있지 않거나 가려진 느낌도 있다. 손 감독의 이 삶의 모습을 온전히 가감 없이 보여주려는 데에 좀 더 많은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의문투성이인 우리네 인생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한사람의 시점으로 극이 진행된다. 도일이 여자친구를 찾으면서 겪는 답답한 과정을 현실 그대로 그리고 싶어서 전지적 작가 시점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나머지는 관객들과 도일 모두에게 퀘스천 마크로 남겨 놓고 싶었다. 애초에 찾고자 노력 하는데 못 찾는다. 여자친구가 도대체 도망간 이유, 이렇게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는 심경은 뭘까? 그 안타까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조금 더 관객들에게 신호들을 읽을 수 있는 포인트를 줘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처음 장편을 하는 사람의 책임감을 느꼈다.”
‘아기와 나’는 손태겸 감독의 솔직한 정서가 그대로 느껴지는 영화이다. 스스로는 “서툴고 부족하지만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많이 부족하지만, 제 영화를 보면 너무 솔직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 대단한 영화로 기억되진 않겠지만, 한분 두분이 제가 만든 이런 영화가 기억난다고 말 해주는 게 좋다. 소수의 분들이라도 이야기 해주신다면 제가 이일을 하는 이유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나 용기가 되는 것이니까. 그런 시선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