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발생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5.4 지진으로 아이들이 밀집한 어린이집도 50여곳이 부서지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러나 어린이집이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됐는지 현황조차 모르고 있다. 재해 피해에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들이 지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5일 일어난 경북 포항 지진으로 총 55곳의 어린이집이 파손·균열 피해를 입었다. 국공립어린이집 12곳, 민간어린이집 34곳, 가정어린이집 9곳이다. 학교가 초·중·고등학교를 합쳐 135곳 파손·균열 피해 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준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서는 건물 외벽이 무너져내려 아래에 있던 어린이집 차량이 심하게 찌그러지는 일도 있었다.
실내에 있던 집기가 파손되는 피해도 총 38건이었다. 국공립과 민간, 가정이 각각 4건, 16건, 19건이다.
부상자도 한 명 나왔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지만 건물 피해 규모를 생각하면 여러 명의 어린이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은 만 6세도 안 되는 유아여서 재해 피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어린이집 지진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재해 관리·예방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공공시설물은 물론 민간시설물도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지어졌는지 내진설계 적용률을 집계하고 있다. 공공시설물은 언제까지 얼마나 내진율을 끌어올릴지 계획도 있다.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의 경우 2034년까지 내진율을 100%까지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매년 2,5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한다.
반면 어린이집은 내진율 파악조차 안 돼 있는 상황이다. 현황 파악이 안 돼 있으니 내진 보강 계획도 있을 수 없다. 행안부 관계자는 “어린이집은 기본적으로 보건복지부 소관인데 복지부에서 별도로 내진율을 집계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2015년 전수 조사 때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일부 어린이집은 조사가 됐다”고 설명했다. 2015년 내진율을 조사한 어린이집은 324곳이다. 전체 어린이집의 0.8% 수준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어린이집이 전국에 4만여곳이나 되고 대부분이 민간어린이집이라 내진율까지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3,000여곳에 이르는 국공립어린이집조차 제대로 실태 조사가 안 된 사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학교의 경우 국공립이 대다수이기는 하나 사립까지 내진율 관리 체계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도 대비된다. 전체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강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만이라도 현황 파악과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포항 지진을 포함해 한반도 역대 지진규모 상위 10위 가운데 5곳은 경상도에서 일어났다.
인천에서 자녀 2명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정모씨는 “어린이집은 그렇지 않아도 낡은 곳이 많고 벽이 갈라진 곳도 있는데 지진이라도 터지면 어떻게 될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은 “어린이집이 지진 관리 사각지대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는데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이라도 전수조사를 하고 제대로 된 관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