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진앙 주변에서 ‘액상화’ 현상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이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거나 기우뚱 쓰러지는 등 건물피해가 컸다는 분석이 나왔다. 액상화는 지진으로 퇴적층의 흙탕물이 지표면 위로 솟아올라 지반이 물렁해지는 현상이다.
부산대 손문 교수팀은 19일 포항 진앙 주변 2㎞ 반경에서 액상화 흔적 100여곳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교수팀은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액상화 현상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교수팀은 지진 발생 당시 진앙 주변 논밭에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아올랐다’는 주민 증언도 확보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현장조사팀도 지난 18일 진앙 주변 지표지질 조사를 통해 액상화 현상과 함께 나타나는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와 ‘머드 볼케이노(진흙 분출구)’ 30여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액상화(液相化)는 강한 지진의 진동으로 땅속의 지하수의 수압이 높아지고 쏠리면서 주변 토양과 함께 액체화돼 지표면 밖으로 분출되는 현상이다. 당연히 토양이 분출된 양만큼 지하에는 공간이 생기고 지반은 약해진다. 이번 지진이 경주 지진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액상화 현상이 동반된 탓에 건물의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주장이다. 철거가 불가피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포항 대성아파트 또한 액상화로 피해가 특히 더 심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진앙 근처인 포항 흥해읍 일대 논밭에서는 구멍과 함께 진흙들이 쌓여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일부 지역에서는 구멍으로 물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이곳 논밭들은 지진 전 바짝 말라 있었지만 지진 후에는 논에 물을 댄 것처럼 물이 흥건했다.
전문가들은 지표면에 액상화 현상이 나타나면 내진 설계가 잘 돼 있는 건물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진 대비가 잘 돼 있는 일본도 1964년 니가타지진 때 액상화 현상으로 아파트 3채가 기울어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포항의 경우 경주처럼 단단한 화강암 암반이 아니라 암석화가 덜 된 퇴적암 암반이어서 액상화 발생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기상청은 이번이 발견된 흙탕물 발생 현상 등이 액상화 현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날부터 추가 조사를 시작했다. 기상청은 “아직까지는 지표면 현상만 가지고는 액상화 현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진으로 지표면이 압력을 받아 지하수가 일시적으로 뿜어져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