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택

[정두환의 집과사람] 반쪽짜리 아파트 공동체

보안 이유로 아이들 통학로 폐쇄

시설 개방 약속해놓고 '나몰라라'





#1= 큰 아들의 통학문제로 이사하기 전 거주하던 K시의 A아파트. 8년전 재건축된 그 단지는 2,000가구가 넘는데다 가장 인기가 있는 초중학교 후문이 단지와 바로 연결돼 있어 K시 내에서도 가장 비싼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입주 초기에는 있었던 쪽문 2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표면적으로는 출입구가 너무 많아 보안이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주민들이 쪽문을 막은 진짜 속내는 바로 옆 B단지 학생들이 통학을 위해 단지를 통과하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결국 B단지 학생들은 막혀버린 쪽문 탓에 두 배 가까운 거리를 돌아서 학교를 오가고 있다. B단지 주민들은 항의 표시로 A단지가 막은 쪽문 앞에 또 하나의 담을 쳐버렸다. 이후 두 단지 주민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이웃 단지에 사는 학생과는 어울리지도 못하게 가르친다고 한다.

#2= 입사 동기인 사내 동료 기자가 “집에 난방이 안돼 잠조차 잘 못잔다”고 투덜댄다. 지역난방 방식이어서 개별 보일러도 없는데 난방이 안된다는 사실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사연인 즉 관리사무소에서 각 동으로 온수를 보내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단지 내 2개 동에 난방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개 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의 입주자 대부분이 수리비용을 장기수선충당금에서 지출하는 것에 반대하는 바람에 공사도 못한 채 냉방에서 덜덜 떨며 자고 있다는 것이다.

#3= 서울 서초구청이 최근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입주자대표회의에 건축법 위반을 이유로 이를 시정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재건축 당시 가구별 층고를 높이고 최고 38층까지 허용하는 조건으로 주민들이 약속한 커뮤니티센터 등 단지내 시설 개방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서초구청의 공문에도 여전히 시설 개방에 부정적이라고 한다. 커뮤니티 시설을 개방하면 보안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인데 솔직히 이유는 뻔하다. 속된 말로 ‘잘나가는 우리 아파트에 외부인이 들락날락하면 집값 떨어질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이익만 추구하다 인근 주민과 갈등 빈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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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택 60% 차지하지만 ‘공동체’ 무색



정부의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국 주택 1,637만채 가운데 아파트는 981만채에 이른다. 10가구 중 6가구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말 그대로 아파트 공화국이다. 20년 전인 1995년 아파트 비중이 37.7%였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파트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공동체 회복 운동도 꾸준히 전개돼 왔다. 1990년대 초 YMCA 등 사회단체 주도로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제 개별 아파트 단지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설 만큼 형식적으로는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파트 공동체’ 문화의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옆 단지 아이들 통학로 막겠다고 담을 쌓은 아파트, 온갖 혜택 받아놓고 외부 사람과 섞이기 싫다고 약속은 나몰라라 하는 주민들. 이런 일들을 듣고 겪을 때마다 ‘아파트 공동체’라는 표현은 공허해진다. 애초에 집이 사는(Live) 곳이 아닌 사는(Buy) 것, 재산증식의 수단인 한 ‘아파트 공동체’라는 것은 입주자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건설부동산부문 선임기자 dhchung@sedaily.com

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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