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존리 대표 "100년 펀드 만드는데...단기수익률 집착은 투자 아닌 투기죠"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투자교육 부재로 단기수익에 민감

기자 대상 시작 시골 학교 등 돌며

내년 금융교육 전국버스투어 나서

"노후자금 마련위해 주식투자해야"

부녀회·동문회 등 찾아 적극 권유

펀드도 '월급의 10%' 정기적 납입

운용사 믿고 수년간 투자해야 유리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송은석기자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송은석기자


메리츠자산운용의 간판 펀드인 메리츠코리아펀드의 지난 1년은 고통스러웠다. 설정 후 4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한국 증시에서 우량주 장기투자의 길을 열었던 메리츠코리아펀드는 대형주 장세가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오히려 수익률이 하락했다. 중소형 우량주에 집중했던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일부 종목만의 상승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2013년 7월 설정 이후 단숨에 1조원의 메가펀드로 성장했던 메리츠코리아펀드에 대해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판매에 열중했던 증권·은행·보험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존리(John Lee, 이정복)메리츠운용 대표가 “한국 시장을 모른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1조7,000억원까지 불어났던 설정액은 1조원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단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펀드의 수익률은 1년 만에 다시 회복했다. 펀드평가사 한국펀드평가(KFR)의 11월24일 기준 1개월 7.73%, 연초 후 18.48%를 기록하며 일반주식형펀드의 1개월 평균 수익률 3.69%를 넘어섰다. 1년 만에 수익률을 회복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고집스럽게 우량주 장기투자의 운용철학을 지킨 리 대표의 뚝심의 승리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대형주 장세에 굴복해 결국 삼성전자 우선주를 편입하며 운용철학을 버렸다는 비판이 오고 간다.


사간을 되돌려 2014년 리 대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올 당시에도 기대와 비난의 목소리가 엇갈렸다. 그가 100년 역사의 장기투자 철학을 가진 미국 스커더인베스트먼트에서 최초의 한국 집중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를 15년간 운용한 베테랑 펀드매니저라는 점은 기대를 한껏 높였다. 그렇지만 당시까지 수익률 ‘꼴찌’였던 메리츠운용을 선택한 점에서는 ‘오너’와의 관계를 의심하며 색안경을 낀 시장의 평가가 나돌기도 했다.

리 대표는 이런 시장의 평가에 관심이 없다. ‘자기 길’을 걷고 있고 걸을 뿐이라고 말한다. 메리츠금융그룹의 최고위층을 설득해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없애고 계열사 경영진 회의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자산운용사 CEO라면 으레 소유하고 있을 법한 기사 달린 고급 세단도 없다. 여전히 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투자자의 돈을 운용해서 얻은 수익을 고급세단에 사용하는 것은 사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시도 때도 없이 주식투자 전도사를 자처하며 아파트 부녀회든 고등학교 동문회든 어떤 친목단체든 돌아다닌다.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지금이라도 주식투자를 해야 합니다”라고 존리 대표는 말한다.

20일 서울 북촌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만난 리 대표는 수익률부터 묻는 기자에게 호쾌하게 답을 했다. “100년, 200년 가는 펀드를 만들고 있는데 단기수익률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 그는 “하루하루 수익률에 매달리는 것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지적했다.

리 대표에게 요즘 관심은 수익률보다는 ‘투자교육’이다. 리 대표는 교육의 부재가 언론과 투자자들을 단기수익률에 연연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일주일, 한 달 수익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은퇴 후 노후자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리 대표는 “투자자가 운용사에 기회를 주는 것처럼 투자 철학과 가치를 후배 매니저에게 물려주고 기회를 주고 싶다”며 “존리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에게 메리츠운용의 철학은 100년, 200년 후에도 변함이 없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의 임기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기라는 게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며 “펀드매니저나 CEO를 믿고 투자했는데 3년 후에 펀드를 떠날 수도 있다면 누가 믿고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대형주 위주의 장세가 올해 정점을 찍으며 리 대표는 메리츠자산운용에 합류한 후 가장 외로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메리츠코리아펀드가 중소형주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까닭에 대형주 위주의 장세에서 메리츠코리아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4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던 메리츠코리아는 오히려 -20%까지 수직 하락했고 이에 대한 항의와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메리츠코리아펀드를 팔지 않겠다는 판매사가 늘어났고 고객의 환매는 계속됐다. 올해 상반기에는 노골적인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최대 피해를 보는 펀드로 이름을 올리며 수난은 더욱 심해졌다. 수익률 하락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리 대표는 오히려 “기회”였다며 의외의 답을 했다. “사드는 정치적 이슈”라며 “비싸서 매수하지 못할 종목이 정치적인 이슈로 일시적으로 조정돼 싸졌다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했다.

관련기사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송은석기자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송은석기자


시장에서 존리도 변했다는 말이 나온 삼성전자 우선주 편입에 대한 입장은 명확했다. 그는 “애초에 삼성전자를 매수한다 안 한다 말한 적도 없다”며 “일부 언론의 기사가 나간 후 철학이 바뀌었다 아니다는 말들이 나오지만 동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리 대표는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삼성전자가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려 우선주에 투자한 것”이라며 “여기에 반도체 업사이드 사이클을 전망하고 SK하이닉스를 추가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트렌드를 반영해 포트폴리오를 전적으로 바꿨다면 모르지만 한두 종목의 변화를 투자철학의 변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현재 한국 투자문화의 후진적인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리 대표는 투자 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내년부터 전사적인 목표로 ‘전국버스투어 금융교육’에 나설 계획이다. “단기투자에 민감해서는 정말 미래가 없다”며 “수능시험에 ‘몰빵’하고 사지선다에 익숙한 나머지 금융과 노후준비에서도 다른 비판적 대안을 고민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 대표는 언론인들이 노후준비에 가장 취약한 상황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의미 없는 단기수익률 기사를 많이 쓰는 만큼 언론인들의 투자철학이 가장 큰 리스크라는 점에서 내년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시작으로 시골 학교, 마을 회관 등 열 명만 모여도 전국을 순회하며 금융교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는 이유가 결국 부자가 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냐는 게 리 대표의 버스투어 계획 배경이다. “명문대학을 졸업해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한다고 노후준비가 되기 어렵다”며 “사교육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주식에 투자한다면 더 큰 부와 경험을 갖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 대표는 “주식투자에 시간과 돈을 들이라고 하면 아직도 한국에서는 낯설어한다”며 “그 이유가 여전히 주식을 도박으로 대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단기수익률에 연연하는 것도 주식을 도박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사업보고서조차 보지 않고 투자종목을 선택한다는 점은 사실상 무지에 가까운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더라도 상하지는 않았는지 국산 콩인지 다 따져보는데 투자하는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펀드 납입도 ‘기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월급의 10%를 ‘기계적’으로 납입시키고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며 “펀드매니저와 회사를 믿고 들어간 펀드인 만큼 수년간 차곡차곡 수익이 쌓이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리 대표의 투자철학과 운용철학은 펀드 운용과 설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공모펀드로는 드물게 10년 만기 폐쇄형으로 ‘메리츠 베트남 펀드’를 설정했다. 운용업계에서는 투자자에게 ‘불친절’한 폐쇄형 펀드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봤지만 리 대표는 펀드 설정의 성공 여부보다는 일종의 장기투자상품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겠다는 의지의 상품이었다. 리 대표는 메리츠운용의 펀드매니저 각자가 운용하는 펀드에 자기 돈을 투자하게 하고 있다. 이 역시 펀드매니저의 책임감을 높이고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려는 의지라는 게 리 대표의 설명이다.

리 대표는 “그동안 운용사가 신뢰를 쌓지 못했던 점은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환매가 무서워 트렌드를 쫓는 투자는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식투자가 당장 몇 푼 돈을 쥐기보다는 노후준비를 위한 유일한 대책이라는 리 대표의 잔소리는 내년부터 전국버스투어에서 더 자주 듣게 될 것으로 보인다.

/송종호·김연하기자 joist1894@sedaily.com

He is... △1958년 인천 △1977년 서울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1984년 미국 뉴욕대 회계학과 졸업 △1991년~1994년 스커더인베스트먼트 Portfolio Manager △1994년~2005년 도이치투자신탁운용 Portfolio Manager △2005년~2013년 라자드자산운용 Managing Director △2014년~현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

송종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