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IT가 IMF 극복 큰 도움...文정부도 '4차산업 리더십' 발휘해야"

[환란 20년 릴레이 인터뷰] 진대제 前정통부 장관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

드론·자율주행차 등 20개 과제 국가적 프로젝트 만들고

관련 기업들 묶어 컨소시엄 구축 등 강력한 드라이브 걸어야

최저임금·공정경쟁 등 취지는 공감하지만 균형점 찾기 필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송은석기자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송은석기자


“IMF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가 벤처지원정책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든 것처럼 조선·철강·화학·자동차 등 전통산업의 경쟁력이 약해지는 요즘 범정부적으로 ‘눈에 보이는’ 4차 산업혁명 과제를 추진해야 합니다.”

진대제(65·사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지난 16일 서울 양재동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외환위기 때 벤처붐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정보기술(IT)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낸 것도 성장동력을 키우는 데 큰 힘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삼성전자 비메모리 부문 대표이사 부사장에 이어 2000년 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고 2003년 참여정부 첫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6년 말 창업한 진 회장은 우선 20년 전 외환위기 전후 상황부터 꺼냈다. “외환위기 한 해 전인 1996년 하반기부터 반도체가 공급과잉으로 가격이 떨어지고 수출도 안 돼 밀어내기를 했어요. TV 재고가 삼성전자 수원공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쌓였죠. 비상이 걸렸어요. 윤종용 대표 주재로 전 임원이 사직서를 써 이건희 회장이 선별수리하도록 하고 7만5,000여명의 직원 중 2만5,000여명을 내보냈어요. 당시 3만원대에 유상증자를 했는데 실권주가 많이 생겨 임원들에게 1만~2만주씩 강제배당할 정도였어요.”

극복 과정에 대한 말도 이어졌다. “1998년 초 ‘앤더슨양’이라는 컨설팅사에 혁신대책을 주문해 기획·개발·제조·영업마케팅 등 기능조직을 일종의 소사장제처럼 ‘자율경영 사업부 체제’로 재편하라는 처방을 받았죠. 문제가 터지면 서로 비난하다가 권한을 위임받으니 책임경영이 돼 굉장한 효력을 발휘했어요. 저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맡아 메모리와 비메모리 회계를 구분하고 부천 비메모리 공장도 외국에 3억5,000만달러(당시 5,000억원)에 팔아 1998년에 삼성전자가 겨우 적자가 나지 않게 만들었죠. 마침 환율도 달러당 1,800원까지 상승해 수출도 늘고 삼성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진 회장은 이어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명퇴 러시로 많은 경력자가 시장에 나왔고 김대중 정부가 벤처지원제도를 만들어 IT 기업을 육성한 게 IMF를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세계적 디지털 혁명으로 IT 버블까지 생겼지만 그때 뿌린 씨앗이 커지고 참여정부 IT 진흥정책을 거치며 경제가 업그레이드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통부 장관 시절 와이브로(휴대인터넷)·DMB·홈네트워크 등 8대 신규 서비스를 하면 3개 인프라(광대역통합망 등)가 만들어지고 9대 신성장동력(차세대 이동통신·임베디드 SW·지능형로봇 등)이 선순환하는 ‘IT839’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정통부가 이명박 정부에서 해체돼 IT 컨트롤타워가 분산되며 그의 정책도 추동력을 잃는 좌절을 겪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결국 동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미국이 2004년 사막을 횡단하는 무인자동차 대회인 ‘다르파(DARPA)그랜드챌린지’를 연 것을 들며 ‘눈에 보이는 4차 산업혁명’을 강조했다.

“드론·자율주행차·스마트팩토리 등 20여가지 신산업을 하나씩 붙잡고 국가적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율차를 예로 들면 정부가 내년 5월쯤 서울~부산 경진대회를 공지하고 대기업·벤처스타트업·학계 등이 한 팀이 돼 5개 정도 컨소시엄을 만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장병규)가 관련 기업을 불러 컨소시엄을 묶어주는 거죠. 기술과 지적재산은 공유하되 특허 로열티는 정산해주면 됩니다. 현대차가 자율주행 전기차와 플랫폼을 내놓고 네이버 등 포털, 통신사, 대학교 등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레벨3.0 규모로 대결을 벌일 수 있어요. 대통령도 시승하고 모든 부처가 덤벼들어 예산도 투입해야죠. 자율주행차 허가 받은 곳이 16개라는데 시너지를 내도록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합니다.” 그는 이어 전두환 정권 당시 반도체를 개발할 때 삼성·현대·LG가 각각 하면 힘들지만 공동으로 힘을 합치도록 해 정부가 예산을 지원했던 사례를 들었다. 결국 정부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해 추동력을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당장 필요한 게 많은데 소리나 바람을 최소화하는 1~2인용 드론을 개발하면 화재 때 헬리콥터 대신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 지진 탐색이나 구호에도 용이합니다. 무인드론으로 DMZ도 감시할 수 있고 국방에도 쓸모 있어요. 2년 전 창조국방 자문위원으로서 북한 방사정포 요격무력화 시스템과 스텔스 무인 전투기전폭기를 만들라고 제안했어요. 사물인터넷(IoT), 적외선관측기, 속도제어, 대형 컴퓨터, 탄도학 등을 조합하면 되죠.”

그는 이어 △천재지변 예고방지와 수자원 관리 시스템 △완전 자동화 맞춤형 제조 시스템 △인공지능 활용 음성 대화와 한영 통역 챗봇 △IoT 이용 미세먼지 발생원인 추적감축 기술 △육아·노인 간병 로봇 △고층건물 인명구조와 화재진압 시스템 개발 등을 추진과제로 들었다. 그는 “4차산업혁명위가 유관부처와 민간기업, 출연연구소와 함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예산을 확보해 과제를 조정·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회장은 “우리 기업이 IMF 전에 비하면 체질이 많이 튼튼해졌지만 빅데이터·인공지능·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되면서 잘하는 게 사라져버렸다”며 전통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신산업을 키우기 위한 정부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선진국 기술을 베끼는 ‘패스트팔로어’ 전략이 중국에 밀리게 됨에 따라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 사회로의 변화에 맞춰 오너와 경영자의 마인드 변화도 촉구했다.

“예전에는 기업 부채비율이 300%가 대부분이었는데 글로벌스탠더드를 따라가며 지금은 50%까지 낮아졌죠. 분식회계 등 오너의 전횡이 수없이 많았고 사외이사도 거수기라 회사가 등기이사 도장을 맘대로 찍었는데 이제는 회사나 회계법인, 사외이사 다 배임이 되죠.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기업이 잘 버텼어요.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탈바꿈하지 못해 5년쯤 꾸물꾸물하다가는 대부분이 뒤처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 “아디다스가 말레이시아 공장을 독일로 옮겨 (스마트팩토리) 혁신을 통해 공정과 기계, 판매방식을 완전히 바꿨는데 베끼기도 어렵다”며 “대기업도 그렇지만 중소기업은 글로벌스탠더드도 미진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걱정이 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중국의 각 분야 리더를 보면 젊고 변화를 재빨리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정부든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우버·에어비앤비·아마존처럼 혁신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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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회장은 정부의 최저임금·세금·공정경쟁 정책 등에 대해서도 “취지는 공감하지만 경제정책이라는 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례로 내년 1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시간당 7,530원) 인상도 정부 예상과 달리 아파트 경비나 외식업 등 소상공업계, 제조·서비스 기업 근로자의 해고사태로 불똥이 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보다 법인세가 낮지만) 법인세 인상 추진도 세계적 인하 추세를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가격 후려치기와 지적재산권 탈취를 심하게 단죄하면 중국 등 해외로 거래선과 생산기지를 옮길 수도 있는 부분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기업이 맨날 죽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 정부가 ‘보수정권의 성장우선정책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대·중기 공정경쟁 환경 조성이나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는데 해볼 수 있다”면서도 “경제는 심리가 중요해 시장에서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어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AIST 석좌교수와 한국교육혁신위원 등의 경험을 살려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한 교육혁명도 역설했다. 그는 “주입식 수능시험을 폐지하고 학생 선발권은 대학에 넘기되 초중고는 ‘거꾸로 교육(집에서 공부한 뒤 학교에서 토론)’을 창의성을 길러줘야 한다”며 “유치원도 의무교육화하고 대학은 2~3년으로 축소하되 창의성 있는 학생만 특수대학이나 대학원으로 진학시키고 국민의 평생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진대제는 누구

노무현 대통령이 점 찍어 정통부장관 발탁

삼성전자 CEO경험 살려 IT육성 진두지휘

‘삼성전자에서 경영도 해보고 정보통신부 장관도 했는데 작은 올챙이처럼 흩어져 있는 국내 벤처기업을 개구리로 제대로 성장시키는 기업 생태계를 만들겠습니다.’

지난 2006년 말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사모펀드를 창업하며 다진 각오다. 그는 서울 강남 양재동 사무실에 ‘일일학일일신(日日學日日新·매일 배워 날마다 새로워진다)’이라는 글귀를 크게 붙여 놓고 장관과 기업 재직 시절, 6명의 손주와 찍은 사진 등을 진열해놨다.

“이제는 연기금 60% 등 펀드 규모가 2조원인데 중소기업을 인수해 중견기업으로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매출 500억~1,000억원짜리를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와 혁신해 두 배로 키워 매각하죠.” 실제 그는 SCD를 인수해 일본 산쿄에 팔고 SIT와 테이펙스를 사서 각각 한화와 한솔에 매각하고 KCTL이나 아웃백스테이크도 사는 등 그동안 55개 기업에 투자해 27개 기업을 키워 엑시트했다. 이 가운데 십중팔구는 성공한 딜이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승승장구한 그도 ‘실패’의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그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경기지사 선거에 나가라’는 말을 듣고 출마했다가 그해 5·31지방선거에서 김문수 지사에 석패했다. 결국 이 결과는 그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앞서 그는 2003년 2월 한 조찬포럼에서 ‘중국이 5년 내 반도체를 제외하고 한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강연했는데 이 내용을 접한 문희상 비서실장이 정통부 장관으로 천거했다. “노 대통령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고 장관으로서 ‘IT839’ 등 IT 붐을 열심히 일으켰던 것을 현장에 접목해보고 싶기도 했지요. 하지만 선거에서 지고 나니 한동안 잠도 잘 못 자다가 지인들과 백두산에 갔는데 천지를 보고 스카이레이크(천지)를 창업하겠다고 마음을 굳혔죠.”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매사추세츠주립대 석사, 스탠퍼드대 박사를 한 뒤 삼성전자에서 활약하고 정통부 장관까지 했던 그가 쓰디쓴 실패로 인한 공허함을 딛고 국내 정보기술(IT) 기업 육성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펀드출자자(LP)가 돈을 잘 주지 않아 2007년 만든 1·2호 펀드의 규모가 작았다. 그래도 삼성전자나 금융 쪽에서 일한 인력을 잘 꾸려 현금 흐름이나 성장 가능성, 핵심 역량, 경영 마인드를 본 뒤 인수해 2012~2013년에 각각 10%가량 성과를 내면서 커지게 된다. 진 회장은 “기업을 인수하면 먼저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을 깔아 현금 흐름을 매일 체크하고 박사를 지방공장에 보내 신제품을 개발한다”며 “이후 기업가치가 높아지면서 매수가보다 갑절 정도에 매각하는 게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옵티스로부터 팬택 인수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한 것도 그의 선구안을 보여주는 사례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진대제(왼쪽 두번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이던 지난 2003년 벤처 CEO포럼을 주재하기 위해 이해진(〃 첫번째) NHN 대표, 안철수(〃 네번째) 안연구소 사장 등과 행사장에 들어오고 있다. /서울경제DB진대제(왼쪽 두번째)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이던 지난 2003년 벤처 CEO포럼을 주재하기 위해 이해진(〃 첫번째) NHN 대표, 안철수(〃 네번째) 안연구소 사장 등과 행사장에 들어오고 있다. /서울경제DB


고광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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