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시민단체가 평가·인사까지 개입..."감시자가 플레이어로 나선꼴"

공기업 ‘참여연대 이사’ 나온다

靑·정부요직 장악 이어 원전·통신비 인하 참여

"본연 역할 넘어 과도한 권력돼간다" 우려 고조

"경영 평가는 고난도 작업...전문성 부족" 지적

2115A03 시민단체의 공공기관 경영 참여 확대 문제점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청와대와 내각 요직에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단체의 권한과 역할은 비대해졌다. 권한이 커진 시민단체는 금융감독원장 등의 인선은 물론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문제, 통신비 인하 등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에 의무적으로 시민단체 추천 인사 한 명을 이사로 두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시민단체는 이미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도 개입하고 있어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인 감시를 넘어 과도한 권력이 돼간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논의하던 초기에는 시민단체 추천 인사까지 이사로 포함하는 안은 검토하지 않았다. 노동이사제의 모델 격인 서울시 근로자이사제(지난해 9월 조례 제정)도 기관 운영 시 노사 간 협력과 경영 투명성을 위해 재직자 중 대표를 선발하는 방식일 뿐 시민단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이사제를 법안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이사제’가 돌연 ‘노동·시민단체 이사제’로 변했다. 표면적으로는 폭넓은 의견을 듣는다는 명분이지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민단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여당과 호흡을 맞춰 법안을 추진하는 기획재정부도 노동이사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민단체가 추가된 부분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법안 심사(21일)를 앞두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역시 의문을 품고 있다. 김광묵 기재위 수석전문위원은 “공공기관 비상임이사는 객관적 입장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시민단체 추천자는 정치적 중립 문제가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시민단체 추천만으로는 자격을 검증하기 어려워 높은 책임감이 필요한 이사에 부적격자를 임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전력 같은 상장 공기업에 시민단체 출신 인사가 이사에 오르면 주가에 부정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기업이 어려울 때 회사 이익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할 수도 있는 만큼 주주가 아닌 시민단체 추천자가 이사회에 참석할 경우 기업·주식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가 큰 공기업과 달리 동서발전 등 비상임이사가 5명 안팎인 곳은 노동·시민단체 이사가 각각 1명씩 참여하면 전체 비상임이사의 40%를 차지한다. 회사 의사결정이 경영 외 측면에 지나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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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다. 정부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시민단체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방침이다. 계획대로 간다면 시민단체는 공공기관 평가부터 경영까지 모두 개입하는 셈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에 참여하고 있는 한 교수는 “경영평가는 전문성과 집중이 필요한 고난도의 작업”이라며 “시민단체 활동가가 참여하는 경우 정밀한 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공공기관뿐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인사들은 청와대와 정부 부처 수장에 대거 임명됐고 정부의 정책 결정에 적잖은 영향력을 미친다. 지난달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를 논의하는 공론화위원회에서도 긴급 결성된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시민운동’이 건설 반대 측 대표로 참여해 적극적인 중단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반대’ 여론을 이끌어 실제 건설 저지에 나서기 위해 무리한 조직 동원에 나섰다는 논란이 일었다. 앞서 금융감독원장 선임 과정에서도 사실상 유력한 후보였던 김조원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한국항공우주 사장)이 최종 낙마한 이유는 참여연대의 반대가 결정적이었다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 시장 논리에 거스른다는 지적이 쏟아진 정부의 통신비 절감책 역시 시민단체의 지적에서 비롯됐다.

시민단체의 가치는 제3자의 위치에서 견제와 감시를 하는 데 있다. 경영 참여를 통한 직접 감시는 역할의 정당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부터 새 정부 출범까지의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공은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최근 시민단체의 역할 확대는 걱정할 지경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비판 역할을 담당하는 시민단체가 직접 플레이어가 되면 시민단체는 누가 감독하느냐”며 “정부와 시민단체가 서로의 입맛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후죽순 늘어나는 시민단체를 엄정히 골라낼 장치를 만들기 어려운 만큼 시민단체에 과도한 힘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불분명한 시민단체가 많아지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시민단체는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임진혁·박형윤기자 liberal@sedaily.com

세종=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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