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내 제약업계의 수출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수출액은 전년보다 감소해 내수 위주의 마케팅 전략이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3·4분기까지 국내 30대 상장 제약사의 누적 매출액은 8조2,03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7조8,228억원에 비해 4.9% 늘어나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출액은 1조629억원에서 7.3% 줄어든 9,855억원에 그쳤다.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도 같은 기간 13.6%에서 12.0%로 1.6%포인트가 줄었다.
대형 제약사 중에서는 업계 1위인 유한양행이 올 3·4분기까지 누적 수출액 2,000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1,801억원보다 11% 증가했다. 하지만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은 지난해 18.6%에서 18.4%로 0.2%포인트가 감소했다. 전체 매출액이 증가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출액은 적게 늘었다는 의미다.
녹십자는 같은 기간 수출액이 1,310억원에서 1,473억원으로 12% 늘었다. 주요 국제기구 백신 입찰에 잇따라 성공하고 주력인 혈액제제도 수출도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 대비 수출 비중도 17.3%에서 18%로 늘어 수출 전문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전통적인 ‘수출 강호’의 부진이 잇따르면서 국내 전체 제약사의 수출액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404억원에서 22.0% 감소한 1,095억원을 기록했고 코오롱생명과학도 같은 기간 741억원에서 17.1% 줄어든 614억원에 그쳤다. 보령제약은 지난해 289억원에서 올해 207억원으로 28.3% 급감했다. 원료의약품을 주력으로 수출하는 에스티팜도 같은 기간 누적 수출액이 1,269억원에서 1,231억원으로 2.9% 줄었다.
약가인하 전쟁에 덩치만 키워
글로벌 겨냥 신약 개발은 더뎌
“해외 진출로 전략 수정 시급”
국내 제약사의 수출액이 감소세에 접어들면서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웠던 국산 의약품의 수출액이 올해 감소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 2012년 20억775억달러이던 국산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해 31억2,039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3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4·4분기에 수출액이 늘어날 여지가 남아있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지 않는 이상 30억달러가 무너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사의 수출 증가세에 제동이 걸린 이유로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위주의 마케팅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지속적인 약가 인하로 경쟁이 치열해지자 수출보다는 내수시장 수성에 주력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는 얘기다. 일부 제약사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약 개발이 여전히 더디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수 위주의 출혈 경쟁에 내몰리다보니 국내 제약업계는 정작 매출액은 늘어나도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떨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며 “꾸준한 신약 개발과 판로 및 해외 진출 지역 다변화를 통해 내수가 아닌 수출 중심으로 근본적인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