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여왕의 남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성(姓)과 이름을 영국식으로 바꿨다. 그리스정교를 믿다 영국 성공회로 개종했다. 그리스 왕족의 지위와 해군 장교의 꿈도 포기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공(96)의 얘기다. 우리에게는 필립공이 익숙하지만 영국에서는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으로 부른다. 필립이라는 이름은 필리포스라는 그리스어의 영어식 표기다. 성은 결혼 즈음 외가 가문인 바텐베르크로 교체한 뒤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두 살 때 숙부의 그리스 왕권이 박탈되자 그의 가족은 영국으로 건너갔다. 필립공이 엘리자베스 공주를 만난 것은 영국 해군사관 생도 시절. 조지 6세가 엘리자베스와 마거릿 공주를 대동하고 해군사관학교를 시찰했을 때 그는 최우등생도 자격으로 공주의 에스코트를 맡았다. 다섯 살 연상 훈남을 본 엘리자베스는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공주의 나이 열세 살 때다. 두 사람은 7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다 공주가 성년이 되자 결혼에 골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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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공은 ‘해가 지지 않는’ 영국 여왕의 남자인 동시에 충직한 신하였다. 1952년 공주의 왕위 대관식 때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8월 공무에서 은퇴하기 전까지 60년 넘도록 여왕의 그림자로 외조라는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가 종종 여성·인종비하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여왕은 모든 것을 용서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20일 여왕 내외가 결혼 70주년을 맞았다. 두 사람 모두 장수한 덕에 영국 왕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필립공의 삶은 행복했을까. 평생 여왕의 부군이라는 꼬리표를 단 채 말이다. 자신의 성을 자식에게 물려주지도 못한다. 속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금슬은 좋다고 정평이 나 있다. 왕의 지위를 주지 않으면 여왕과 나란히 무덤에 묻히지 않겠다고 한 덴마크 왕실의 헨리크 공 내외와는 분명히 비교된다. 그는 결혼 50주년 금혼식 때 “행복한 결혼의 필수요소 중 하나는 인내”라고 한 적이 있다. 슬하의 자녀 네 명 가운데 에드워드 왕자를 빼곤 죄다 이혼한 것이 아이러니지만 인내한 두 사람에게 백년해로라는 말은 잘 어울린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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