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무진기행’·1964).’ 196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승옥의 표현처럼 전남 순천만은 평화와 위안의 장소다. ‘차고 빛나는 푸른 빛의 아스팔트 위에 영혼과 육체를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1963)’ 누인 고단한 삶들에 피어나는 아침 안개와 따스한 햇볕, 금빛 물든 황혼은 어느 곳보다 편안한 휴식처가 된다. 매년 시베리아를 향해 수만㎞를 이동하는 140종 수만 마리의 철새들마저 사로잡는 아름다움이다.
순천만은 그 아름다움만큼 처연한 아픔의 장소다. 고려 중기 이곳에는 정부에 세금으로 바치는 조세미(租稅米)를 모아두는 창고 ‘해룡창(海龍倉)’이 있었다. 하지만 쌀과 재물을 노린 왜구의 출몰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해룡창은 폐쇄됐고 백성들은 왜구의 잔혹함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국방군사연구소의 ‘한민족전쟁통사’에 따르면 왜구가 부녀자와 갓난아이까지 남김없이 죽여 고을이 텅 빌 정도였다고 한다. 악몽은 조선에서도 되풀이됐다. 정유재란이 시작된 1597년 왜군은 순천 왜성을 석 달 안에 축조하기 위해 백성들의 노동력을 가혹하게 착취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고 밤하늘에 별이 총총할 때가 돼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순천만의 노을이 때로는 황금빛이 아닌 핏빛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고병원성 H5N6형 조류인플루엔자(AI)가 순천만 습지를 덮쳤다. 이 일대에서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확인돼 폐쇄조치가 내려졌다. 순천주민들로서는 1년 중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시기에 날벼락을 맞았다. 이뿐이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닭과 오리·메추리들이 땅에 묻히고 얼마나 많은 농가가 눈물을 지을지 모른다. 매번 되풀이되는 공포와 슬픔, 이제 멈추게 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송영규 논설위원